장님의 등불
장님의 등불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3.23 00:00
  • 호수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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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 칼럼위원

아들 녀석이 고딕체의 글씨로 커다랗게 초보운전이라고 써서 내가 타고 다니는 차의 뒤 유리에 붙여놓았다. 지난해도 그 딱지를 붙여 주었는데 올해는 더 큰 글씨로 써 붙여놓은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늙은 어미의 운전 솜씨가 미덥지 않았던지 흐린 날은 물론 어둡지 않아도 아침저녁에는 하향전조등을 켜고 다니라고 당부한다.

초보 운전 딱지는 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 녀석은 처음보다 지금이 더 위험하다며 어디로 구를지 모르는 내 차를 상대방들이 잘 알아서 피해가라는 표시라고 한다. 장님의 등불인 것이다.

발급 받은 지 몇 해째 장롱 속에서 잠자던 운전면허증을 꺼내들고 지난해부터 승용차로 출근을 한다. 하지만 가능하면 걷거나 버스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운전을 한 날은 50여일도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운전 솜씨는 초보에서 한발 짝도 늘지 않았다.

그런데 금년에는 걸어서 출근하기에는 마땅치 않은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어 아무래도 차를 더 타야 할 것 같다.

장님이 등불을 들고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장님이면 등불을 들으나 안 들으나 안 보이는 것은 매 한가지 일 텐데, 왜 등불을 들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앞 못 보는 자신을 잘 피해가라고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당신을 피할 수 없으니 당신이 나를 피해가라는 배려이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안전을 위하는 길이다. 

내 초보 운전 딱지는 장님의 등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덩치 큰 차라도 뒤에 바짝 따라 붙으면 금방 덮칠 것만 같아서 겁이 난다. 그들이 대부분 나를 무시하거나 알아서 몸을 사리며 지나가고 나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차가 밀려서 빠져나가기 어렵다 싶으면 엉거주춤 서서 엄살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장님의 등불처럼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자신 없는 운전 솜씨를 드러내고 엄살을 부리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나만 바로 걸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니 하며 살았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완전하지 못한 내가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겠는가? 나의 미숙한 운전 솜씨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듯이 무심한 말과 행동 때문에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삶은 언제나 초보다. 젊은이에게도, 나 같이 나이든 사람에게도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그리고 내일은 전혀 새로운 시작이다. 나는 언제나 확실치 못한 내일을 향하여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밝은 등불을 들고 다녀야겠다.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내 모습이 잘 보이도록,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고 피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또 누가 아는가? 나에게 닥친 위험을 알려주고 싶어도 어두워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도와주지 못하는지도.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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