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포구=서천” 다시 한번 입증
“진포구=서천” 다시 한번 입증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7.06.08 00:00
  • 호수 3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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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당시 군산진은 존재하지도 않아”
이영 교수 『잊혀진 전쟁, 왜구』에서 명시
   
▲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서천군 일대 지도(출처/이영 교수의『잊혀진 전쟁, 왜구-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162쪽 -출판, 에피스테메-)
고려 우왕(1374~1388) 때 최무선이 화포를 개발해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쟁, ‘진포구전투(鎭浦口戰鬪, 1380)’, ‘진포구’가 군산이냐 서천이냐의 논쟁 속에 이영 교수가 다시 한번 ‘진포구=서천’임을 목 박았다.

이영 교수(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가 쓰고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부가 4월 20일 발행한 『잊혀진 전쟁, 왜구-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에는 책머리에 수록된 「저자 후기」에서 “1380년 충남 서천의 진포구 전투에서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를 사용해 대승하기 까지…”라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책의 제4장 「진포구전투의 역사지리학적 고찰」에서도 한산현 출신 이색의 『목은집』내용 중 “나세·심덕부·최무선 세 원수(元帥)의 수군이 개선한다는 소식을 듣고 병 때문에 교외로 마중 나가지 못하다”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진포구전투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우선 입증했다.

이어 ‘진포구=군산’이라 주장하고 있는 나종우, 김종수 등의 논문 반론에서 “진포전투 당시 군산시의 군산진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며 “비역사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왜구 선단 500척이 정박하고 고려 수군 100여 척이 전투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였을까”라는 의문을 해답으로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서천군일대지도’와 ‘장암진성’의 축조시기‘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결론에서 “관련 자료를 엄밀하게 분석해 본 결과 서천군 장항읍 일대가 그 현장으로 입증되었다”고 명시했다.-책, 189쪽-

이번에 발행된 이 교수의 논문집은 동경대학 총합문화 연구팀과 함께 현장 방문과 고증을 이뤄낸 것이라는 데 의의가 더욱 깊다.

군 담당은 “현재 동경대학의 자료가 송달되고 있는 중”이라며 “이번 기회로 ‘진포구=서천’임을 확실히 더 이상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금강하구는 진포구전투 외에 나·당연합군 침입 시 백제를 돕기위해 출동한 일본국 수군 400여척을 물리친 최초의 국제전이라 불리는 ‘백강구전투(660)’ 등의 역사 현장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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