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과 서천
금강과 서천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12.21 00:00
  • 호수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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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식/우송정보대학교수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에서 발원하여 약 396㎞를 돌고 돌아 서해로 흘러드는 금강(錦江), 우리나라 6대 하천중의 하나로서 남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이요, 용담호와 대청호는 물론 10개의 국가하천과 16개의 지방하천을 가족으로 삼고 있다.

내가 지금 갑자기 강 타령을 하는 까닭은 최근에 읽었던 한권의 흥미로운 책 때문이다. 통제가 용이한 육로교통으로의 대전환이 일제시대부터 적용되기 시작하여 국토분단으로 인한 한강의 활용중지, 단기성 편익을 위한 댐과 하구언 개발, 게다가 발 빠르게 건설되는 다리들로 인하여 몇 척 남아있던 도선용 배마저 점점 사라지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매립이다 간척이다 하면서 흐트러뜨리는 자연 질서, 직접취수 방식만을 고집하며 수자원 보호라는 명분을 주장하는 곱상함에다 슬그머니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를 모아 바다로 빼내고 있는 이중성이야말로 혼란스러운 치수(治水)정책임도 단호히 지적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문명발생도 강(江)이었고 유럽문명이 동양을 앞질러 간 것도 실크로드를 통한 내륙진출보다 더 가치 높은 수로(水路)와 해로(海路)를 열어나갔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때문에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이러한 수로망과 연결된 광대한 배후지를 가지고 있다 한다.

따라서 반도국가인 우리나라는 밖으로의 연결성을 높이고 안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공간개발수단이 요구되는데 바로 교통과 통신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내가 태어난 서천지역이 떠올랐다.

강과 바다는 물론 산과 들, 호수까지도 자리 잡고 있는 천혜의 서천지역!  일제시대에 있어 착취를 목적으로 한 철도와 항구건설로써 잠시 주목받다가 이후 대형산업단지 후보지에 매달여야 하는 지역쇠퇴, 하구둑 개통으로 인한 경제종속 등등이 마치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배가 줄어드는 모습과 같아 보였다.

어떻게 하면 강과 바다에 많은 배를 띄우고 미감쾌청(美感快靑)의 어메니티가 실현되는 푸른 미래의 젊은 서천이 만들어 질까? 어쩌면 그 해답은 우연찮게 깨달았던 바로 물길 찾기에서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야말로 서천(舒川)이라는 이름답게 하천을 펼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혼자만의 접근방법도 좋겠지만 함께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즉, 구동존이(求同存異)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같은 책략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2002년에 마련된 금강권(3시 5군) 행정협의회와 같은 대외활동에 있어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금강수계에 이르는 6시 5구 16군의 범 금강권역에 있어 무엇인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즉, 금강의 관문역할을 우리 서천이 담당하여 나름대로의 혜택과 번영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서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 등 대안사업의 성공적인 활용, 성경전래지라는 독특성 활용, 한산모시의 명품성 활용방안 등을 세계화라는 바다에서 찾아보고 백제문화와 세종신도시, 중원문화권까지 내륙 깊숙이 내지를 수 있는 고유성을 강 길로써 열어 보자는 뜻이다.

예로부터 서천지역이 송사(訟事)와 분쟁이 많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잦은 홍수와 해양세력의 침입과 약탈 등이 원인이었다고 기록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로 인해 만들어진 어렴풋한 배타성은 과감히 뒤로 접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야할 시점에 놓여 있다. 서쪽에 가면 푸른 숲과 사람들로 풍요롭다는 서림(西林) 복원까지도 금강을 밑천삼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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