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죽은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이미 죽은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3.24 00:00
  • 호수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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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교육 정상화, 무엇이 문제인가? -①
사교육 시장이 농촌에까지 확대되며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권기복(홍주중 교사) 칼럼위원의 진단을‘공교육 정상화-무엇이 문제인가’의 주제로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권기복
칼럼위원

 

신 교장이 부임해 왔다. 구 교장이 애지중지 가꾼 화단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돌덩어리를 화단 앞에 포진시키고, 작거나 큰 나무들이 이리저리 옮겨졌다. 그 중 많은 나무들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땔감으로 뽑혀 나갔다. 신 교장은 돌 값, 나무 값 등으로 학교운영비를 고스란히 날렸다. 우등상, 모범상을 수여할 때에도 달랑 상장뿐이었다. 학급에 필요한 물품은 학부모들에게 많은 부담을 떠안길 줄 알아야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았다.

필자가 10여 년간 초등교사로 근무할 때의 학교 풍경이다. 교장이 바뀔 때마다 몸살을 앓고, 죽어가던 나무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 교장은 자신의 부임을 학부모와 지역사회에 알리는 방법으로 학교 풍경을 바꾸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전임자와의 차별성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모습이 비단 초등학교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일까?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4주째를 보내고 있다. 이 대통령 또한 전임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공교육 정상화’ 등을 내걸고 ‘대한민국 선진화’를 이룩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하였다. 뉴스 등을 접해보면, 기존의 많은 것들이 잘못되었기에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 쪽이 심도 있게 들린다. 그렇다. 앞에서 잘못된 것은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의식이 잘잘못을 분별하기에 앞서, ‘나는 너와 다르다.’는 차별성의 강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하게 할 수 있다.

교육 정책은 난로를 치우고 난방기를 설치하였다고, 아니면 선풍기 대신 에어컨으로 바꾸었다고 분위기 조성이 이루어진다거나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수급자인 학생들의 의식 변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교사나 사회의 의식 변환도 요구된다. 이러한 의식 변환, 즉 의식 개혁은 지속적인 교육 정책의 산물로 얻어질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물질적 변화에는 빨리 적응하나 정신적 변화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초고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기성세대나 청소년세대, 모두 물질문화만큼 정신문화가 뒤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문화 지체 현상’이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극심해지면 무규범, 무질서의 양상을 나타내는 ‘아노미 현상’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교육이 정신적 잣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육이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한다면, 아니 수시로 잣대를 바꾸어 들이댄다면 어떤 것에 기준을 정하고 규범과 질서를 잡아가겠는가?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라는 말처럼 지난 백년을 살펴보고, 앞으로 백년 후를 살펴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지난 교육이 잘못되었다 하여 전부 폐기해서도 안 된다. 지난 교육의 잘잘못을 분명히 하여 잘 된 것은 이어가고, 잘못 된 것은 고쳐나가야 한다. 인간의 교육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과 기능은 다양하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절대 다수인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이다. 국가발전을 위한 국가 경쟁력 강화 때문에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 하여도 절대 다수의 시민이 부당하게 여긴다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국가발전을 위한 인재양성이 부득이 필요하다면, 시민이 부당함을 느끼거나 주인의식에 혼선을 받지 않도록 하고, 그들이 시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들로 인식되어져야 한다.

이제 눈을 크게 뜨고 교육 정책을 바라보자. ‘내가 바로 잡겠다.’ 하고 조급해 하지는 않는가? ‘내가 어떻게 했다.’ 하고 드러내기 위함은 아닌가? ‘내 교육관이 올바른 것이다.’ 하는 편향성에 치우쳐 있지는 않는가? 조변석개의 교육 정책은 잘 자라던 나무도 죽일 수 있다. 봄이 와도 이미 죽은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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