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사회는 영어만이 존재할 것인가?
지구촌 사회는 영어만이 존재할 것인가?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3.28 00:00
  • 호수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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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교육 정상화, 무엇이 문제인가? -②

   

권기복
칼럼위원

“엄마! 앞으로 학교에서 우리말 쓰면 잡아가나요?”

올해 초에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로 함)가 영어 몰입 교육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교육에 관한 문제인 만큼 어른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들떠있었다. 예전에도 영어는 중요했다. 특히, 중·고등학생의 경우에 영어와 수학이 대학을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영어는 우리들에게 영 어렵고 낯선 것이었다.

인수위는 ‘2010년부터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에서 영어(수학, 과학까지 거론했다가 곧 철회함) 과목은 영어로 수업하고, 초·중학교에서도 영어로 하는 수업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영어 몰입 교육을 선포했다. 이를 위해 인수위에서는 앞으로 4조원의 예산을 투자하여 ‘영어 전문 강사’를 투입하고, 영어 몰입 교육을 위한 제반 시설을 구비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영어를 국어로 바꾸자’는 망발

인수위와 한나라당 쪽에서는 ‘영어를 잘 하면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영어는 21세기 세계 공용어로써 누구나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 는 등의 주장을 목청 높여 강조하였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 참에 영어를 국어로 바꾸어야 한다.’ 는 망발까지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말을 쓰면 일본 놈이 잡아갔는데, 앞으로는 우리말을 쓰면 우리 놈이 잡아갈 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대중 매체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면면을 보면, 반쪽 영어투성이이다. 2007년을 뜨겁게 달군 대중가요, 원더걸스의 ‘텔미(Tell me)'를 보자. 그 노래가사도 영어 반, 우리말 반이다. 그럼, 원더걸스의 ‘텔미(Tell me)'만 그러한가. 신곡들 대부분이 그렇다. 특히, 중요한 대목이거나 강조할 필요가 느껴지는 대목에는 여지없이 영어 단어가 삽입되어 있다. 대중가요만이 그러할까? 일반인들의 대화도 별반 차이가 없다. 다른 나라에 유례가 없을 만큼 화려한 우리나라의 간판들은 어떠한가? 영어로 표기했든지, 한글로 표기했든지 우리말을 찾기가 보물찾기만큼 어렵다.


사라지는 고유 언어들

현재도 티브이의 가요와 오락프로를 보면, 외국물을 먹은 사람들이 태반이다. 대부분 불법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아닌가? 국내에서조차 그들의 이름도 한국인 이름이 아닌 경우가 많다. 유학 시절에 불렸을 법한, 아니면 그렇게 불려지기를 원했을 법한 서양식 이름을 버젓이 쓰고 있다. 그러한 그들이 보란 듯이 모든 국민이 선망하는 티브이 전파를 그대로 타고 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 없이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날, ‘영어는 훌륭한 언어다.’ 라는 의식이 뿌리째 들어앉아 있다. 즉, 영어 우월주의 현상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자.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노르망디공국이 영국을 점령하고도 그 지배층은 여전히 프랑스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프랑스어는 귀족어이고, 영어는 서민 어 이었다. 우리나라도 고려 말에 몽골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 여파로 조선 시대까지 몽골말이 많이 섞인 궁중 언어와 일반 언어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수많은 고유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아메리카를 지배했던 인디언(사실은 몽골리언임)들의 고유 언어가 사라졌고, 그나마 남은 몇몇의 언어도 소멸 직전에 처해 있다. 그 외에도 5대륙의 수많은 부족 언어들이 밤하늘의 유성처럼 사라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21세기가 끝나면 밤하늘의 태양처럼 영어만 남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22세기에 신체적?정신적 구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하는 천덕꾸러기 세계 시민으로 전락하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21세기 이전의 선조들과는 교감이 끊긴 세계 속의 고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인수위는 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강화하면 사교육비를 줄이고, 기러기 아빠를 퇴출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 학교에서 영어를 강조할수록 영어 학원은 발 딛을 틈이 없어지고 있다. 영어권 나라로의 유학길은 더더욱 문턱이 닳고 있다. 교육지상주의에 푹 빠진 우리나라이기에 부모들은 헐벗고, 굶주림에 빠지더라도 자식만큼은 영어를 영 어렵지 않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러려면 악착같이 영어를 쓰는 영어권 나라로 자기 아이를 진출시키려 할 것이다.


영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영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기능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가 굳이 영어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의사소통만 가능하다면, 영어에 몰입할 필요성이 없다. 미국인은 영어로 말하고, 한국인은 한국어로 말을 해도 동시에 통역을 해 줌으로써 서로 간 의사소통에 하등의 불편을 겪지 않을 통역기가 조만간 등장할 것이다. 이를 위한 선진국들의 과학기술이 코앞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는 50년대에 시작하여 60년대부터 본격적인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카네기 멜론 대학(CMU)이 선두에 서고 있고, 일본과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아직까지 불완전한 음성인식 기술만 보완되면 인터넷 혁명에 버금가는 정보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서 휴대폰을 들고 다니듯이 통역기를 들고 자유자재로 세계를 누비게 될 것이다.

비단 통역기에 의존하여 영어를 소홀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부 정책으로 영어를 강조하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지게 된다. 그 물결이 자갈밭에 이르면 아름다운 자갈 구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뻘밭에 이르면 흙탕물을 일으키게 된다. 즉, 정부의 바라는 바와 그 결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또한, 지금 우리는 영어 못지않게 수학, 과학, 사회와 문화 등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영어만 잘 하면 모든 것이 뚫릴 듯한, 그런 만병통치약은 이 세상에 없다.

영어 못지않게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다보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당당한 지구어(地球語 )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22세기의 후손들에게 우리말을 지킨 당당한 선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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