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 버드나무
수양 버드나무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4.28 00:00
  • 호수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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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순
칼럼위원

초등학교 시절 학교 오가는 둑길에 수양 버드나무가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소나기를 자주 만나곤했다. 무슨 사연인지 그 날따라 소나기는 거기에서 오랫동안 퍼붓다가 갔다.

그 나무 위에서 한 쌍의 금빛 꾀꼬리가 울고 있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울었고 암수 두 마리가 참으로 높은 목소리로 울었다. 유리왕이 나무 그늘에서 들었던 꾀꼬리 울음보다 더 청아하게 울었다. 임이 있어 그렇게도 아름답게 울어대는 것인가. 산과 강이 있어 그렇게 금빛 울음으로 울어대는 것인가.

‘삣 삐요코 삐요, 삣 삐요코 삐요’ 제 몸이 흠뻑 젖는 줄도 모르고 나무 위에서 꾀꼬리는 그렇게도 울어댔다. 햇빛보다도 더 샛노랗고 달빛보다도 더 맑은 청아한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수양버들은 흑단 같은 머리채를 길게 드리우며 내게 우산을 씌워 주었다. 나는 어머니 같은 수양 버드나무에 기대어 빗줄기를 세어가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빗줄기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고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산과 들이 좋았고 나무들이 좋았고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좋았다. 그 날 오후 나는 수묵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저 언덕 대장간 할아버지의 망치 두드리는 소리는 그윽한 차운이었으며 허공의 빗줄기는 아름다운 화제였다. 느닷없는 천둥 소리는 내 인생의 하얀 여백에 붉은 낙관을 찍고 갔다. 아름다운 한국화 한 폭이 금세 완성되었다. 흠뻑 젖어도 좋았고 뼈아프게 맞아도 좋았던 참으로 정겨웠던 소나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들려주고 떠났던 꾀꼬리. 수양 버드나무 아래에서 비를 그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던 나. 그 한 컷은 내 인생에 화인으로 찍힌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고 잊을 수 없는 명화의 한 장면이었다.

소나기는 세상의 못 다한 말들을 왈칵 쏟아놓고 간다. 그 많은 억울한 사연들을 아무 예고 없이 쏟아놓고 간다. 소나기는 무슨 사연이 그리 많아 광풍과 함께 몰고 오는 것인가. 그러다 갑자기 사연 많은 사람 앞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말발굽 소리로 홀연 떠나는 것인가. 소나기가 무엇이길래 꾀꼬리 울음이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까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눈물겹게 생각나게 하는가.

화폭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어 그런 것인가. 흠뻑 젖은 책보, 벗겨진 검정 고무신, 질퍽질퍽한 논길 그리고 배고픔 이런 것들이 그 화폭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나를 이토록 지금까지 설레이게 하는가. 그런 것들 때문에 나는 살아야하고 그런 것 때문에 그리워해야하고 꿈을 꾸며 몸부림쳐야하는 것이 아닌가.

인생에 있어서 행운이 있고 축복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재력이 있다해서 권력이 있다해서 행복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행복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하지 않았는가. 마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마음 가짐을 바로 가졌던 옛 선비들의 모습을 이제와 생각해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시대가 바뀌었다해도 지구는 돌고 해는 뜨고 달은 지는 법이다. 사람도 하등 자연과 다를 것이 없을진대 마음 공부와 올바른 마음 가짐은 영원한 진리이며 인생의 화두이다. 보이지 않는다해서 의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아픈 생각이며 깊은 후회이며 우리들이 찾아야할 빛나는 보석들이다. 그 옛날 소나기와 꾀꼬리가 내게 놓고 간 한 폭의 한국화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런 의미였으면 좋겠다.

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 주었던 그 둑길의 수양 버드나무는 없어졌다. 청보리 물결치던 푸른 언덕, 그 언덕 아래의 대장간의 망치 두드리는 소리도 없어졌다. 누구와 이별한 것도 아니고 비에 젖은 빵도 먹지 않았건만 나는 왜 슬픈 얼굴을 하고 장승처럼 거기에서 정신을 놓고 서 있었는가.

소나기야 한 번 가면 그만이지만, 꾀꼬리 울음 소리도 한 번 가면 그만이지만 수양 버드나무는 거기에 있어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 비가 오면 우리들의 우산이 되어주었던 그 수양 버드나무는 거기에 있어야했다.

아, 수양 버드나무가 있었다면 반세기 만에 온 나를 얼마나 반갑게 맞이했을 것인가. 하도 오래되어 못 알아 본다면 내 한 번만이라도 안아주면 말 못하는 그 수양 버드나무도 금세 연둣빛 잎새를 뒤집으며 난리를 쳤을 것이다.

소나기 처럼 한 번 왔다가고 꾀꼬리 처럼 한 번 울다가는 인생이 무엇이길래 단 한 번 바람 처럼 스쳐가는 세월이 무엇이길래 이 새벽 늦게까지 지나온 나를 서럽도록 뒤돌아보게 하는가. 내 잠시 머물렀던 그 둑길. 시간이 가지않는 영원히 머무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자연은 그대로 살게 놓아 두었으면 좋겠다.

너무 늦게 와서 수양 버드나무는 떠났으리라. 몇 번이고 되돌아 보았으나 분명 둑길의 그 수양 버드나무는 거기에 없었다. 사람도 너무 늦게 오면 이렇게 못 만나는 것이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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