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새벽 5시 40분, 아침 6시 뉴스를 꼭 챙겨 보는 도희찬씨(59·판교면 복대리)는 그날도 뉴스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텔레비전 광고방송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키우고 있는 개들이 짖어대 문을 여는 순간 열기가 그의 얼굴을 덮쳤다. 난방을 위해 설치한 화목보일러의 불길이 집으로 옮겨 붙은 것이었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6살 막내아들을 다른 쪽 문밖으로 던지다시피 하며 피신시킨 후 뇌병변장애 1급인 큰아들(20살)과 아내를 데리고 불길을 피했다.
불이 꺼진 후 그들 가족에게 남은 건 큰아들의 휠체어뿐이었다. 도희찬씨는 얼굴에 화상을 입고 3일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충격을 받은 큰아들 역시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다.
며칠 뒤 불에 탄 집을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군관계자들과 함께 온 도희찬씨는 까만 재로 변해버린 보금자리를 보며 다시 이곳에서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져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집수리 봉사단체 등에 조언을 구해 보고 사회단체들의 성금을 모아보겠지만 집수리며 가재도구 등 살림살이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도희찬씨는 가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오는 듯 했다. 시부모님을 함께 모시며 농사를 짓고 살겠다며 소박한 시골생활을 마다않고 시집온 아내 이금자씨(50)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37살 늦은 나이에 결혼한 도씨는 15년 전 경운기 사고를 내 한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해 아내에게 마음고생을 많이 시켰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3년여 전 고등학교에 다니던 큰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경운기에 머리를 부딪쳐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4개월 만에 깨어난 아들은 7~8개월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1주일에 250만원씩 들어가는 병원비를 감당해 낼 수 없어 형제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서 지금은 형제들과 연락도 하지 못하는 사이가 됐다.
병원비만 1억원이 넘게 들었고 군에서 추진하는 숲가꾸기 사업에 참여해 버는 돈으로는 도저히 그 빚을 갚을 길이 없어 형제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 좋은 일들이 계속되고 빠듯한 살림살이에 시달리면서 아내에게 남은 것은 우울증. 그리고 그로 인한 정신장애다. 젊은 시절 순수하고 착하기만 했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니 지금의 상황이 원망스러운지 “시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말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좋다고 하던 아내가 참 예뻐 보였다”며 “그런 사람이 우울증으로 정신장애 판정까지 받게 되다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그는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의 빈집들을 알아보고 장애가 있는 큰 아들에게 꼭 필요한 침대를 수소문하며 “안되면 살던 집터에서 비닐하우스라도 설치해 함께 꿋꿋이 살겠다”고 희망의 끈을 다시 부여잡았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삼시세끼를 먹일 수 있게 해주는 일터로 다시 돌아갔다.
자신만 믿고 따라온 아내를 위해, 평생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가야할 큰아들을 위해, 어려운 형편 탓에 부여의 고모집에 맡겨진 둘째아들을 위해, 그리고 내후년이면 학교에 들어갈 막내아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