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이 피었네, 무꽃이 피었네
감자꽃이 피었네, 무꽃이 피었네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2.02.13 11:40
  • 호수 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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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일생 일만 하다 갔다. 밭일과 집안일만 하다 갔다. 아침에 밭에 나가 일하고 점심 때가 되면 집에 와 점심을 차렸다. 그리고 밭에 나가 또 일을 했다. 저녁 때면 돌아와  또 저녁을 했다. 산후 조리를 잘 못해 몇 차례 심한 배앓이를 한 것 말고는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종일 밖에서 집에서 일만 했다. 
  고혈압인 줄 몰랐다. 쓰러지고야 알았다. 두 번 쓰러지고 세 번 쓰러졌다. 그리고는 아주 먼 길을 떠났다.
  어머니는 그리움도 없고 외로움도 없는 줄 알았다. 종일 일하고 밥만 했다. 그래서 사치는 없는 줄 알았다. 있었다면 그것들을 먼 길 갈 때 갖고 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찾아갈 주소도 없고 차비도 없으니 말동무나 하려고 갖고 갔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얼마나 무거웠을 것인가. 찬라도 서기나 했을 것인가. 한 발자국도 떼기나 했을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놓고 간 그 곳. 거기에서 감자꽃이 피었고 무꽃은 피어났을 것이다.
  나이 들어서야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려서 뼈만 남은 어머니 생각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프고 아린 법이다.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외로움도 있나 보다
    찬라도 서지 못하는 그리움도 있나 보다
    
    거기서
    감자꽃 피었네
    거기서
    무꽃이 피었네

  누구하나 읽어주지 않는 이 ‘어머니’ 시조 한 편. 일만 하다 간 어머니 얘기를 하지 않으면 내 어머니 같은, 세상 어머니의 외로움과 그리움들은 얼마나 고독하고 아파할 것인가.
  그래야 그런 감자꽃과 무꽃이 해마다 피어나지 않을 것이 아닌가.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밭에 나가곤 했었다. 아름답게 피어있는 자주 감자꽃이 참으로 좋았고 청량한 무꽃이 그렇게도 좋았었다.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피었던, 솔바람이 내려와 흔들리며 피었던, 언덕 아래 그 꽃. 먹구름 보내고 봄비 혼자 울기도 했던, 언덕 아래 그 꽃.
  어머니는 그런 아름다운 시를 내게 맡기고 갔다. 
  어머니와의 아련한 추억이 깃든, 누구하나 눈길하나 주지 않는 이 어머니의 시조. 그것은 눈발 날리는 밤 저쪽의 희미한 불빛이었다. 거기서 성냥 하나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성냥팔이 소녀의 호호 불던 그 언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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