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해에서 태어난 실뱀장어
필리핀해에서 태어난 실뱀장어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2.03.23 13:25
  • 호수 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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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하굿둑에서 길을 잃다
1㎏이 중형차 한 대값, 영영 못볼지도…

발전소 가동되며 실뱀장어 안잡힌다

2월 하순이면 금강하구에서 실뱀장어잡이가 시작된다. 5월초까지 계속되는데 5월이 지나면 다른 물고기 알들이 그물에 가득 차 더 이상 실뱀장어는 잡기 어렵다.
시라스라 불리는 실뱀장어는 어민들에게 고소득을 안겨다 주었다. 6000-7000 마리쯤 되는 1kg의 값이 4년 전에는 800만원 안팎이었다. 하룻밤 만에 수백만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더구나 실뱀장어잡이 어로작업은 배가 멀리 이동할 필요도 없어 기름값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한창 제철을 맞은 요즈음 실뱀장어잡이는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금강하구 원수리 일대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는 것이다.
“한 물 때에 어떤 때는 서너 마리 어떤 때는 열댓마리 정도 잡힙니다. 아시레섬 부근에서는 칠팔십마리씩 잡힙니다.”
금강하구실뱀장어채포영어법인 박연풍 회장의 말이다. 어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군산복합화력발전소를 지목하고 있다.


“온배수 뿐이 아닌 거 같아요. 배수구 일대가 시커멓게 색깔이 변해요.”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실뱀장어는 한 해 8톤 가량이었다. 그 가운데 2톤 이상이 금강하구에서 잡혔었다. 그러나 2010년 군산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부터 그 10분의 1도 잡히지 않고 있다.
실뱀장어의 최대 수요국은 일본이다. 한 해 30톤 가량을 잡던 일본이 작년 3월 후꾸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실뱀장어 포획을 중단하며 국제 가격은 폭등했다. 이불 꿰매는 바늘만 한 실뱀장어 한 마리 가격이 7000원, 1kg이면 4000만원을 넘는다. 중형차 한 대 값보다 더 나간다.

 

뱀장어 생태의 비밀 밝혀지다

흔히 풍천장어, 민물장어라 불리는 뱀장어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알 낳고 새끼가 태어나는 모습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신비의 어종이었다.
유럽에 사는 뱀장어가 모조리 6000㎞나 떨어진 카리브해의 사르가소 해역에서 산란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초에 와서였고,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뱀장어의 산란 터가 필리핀해 근처라는 사실은 1991년에야 비로소 분명해졌다고 한다. 위치추적 장치를 달아 인공위성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필리핀 동쪽이자 괌 서쪽,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근처에서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는 물위로 떠올라 긴 여행을 시작한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북적도해류를 타고 서쪽으로 떠가다가 다시 북쪽으로 흐르는 쿠로시오 해류를 만나 동아시아로 방향을 잡는다. 이때 자칫 해류를 잘못 타면 다시 열대로 가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알에서 깨면 물에 뜨기 좋도록 댓잎처럼 넓적한 댓잎뱀장어이지만 강 하구에 도달하면 몸이 원통형으로 바뀐 투명한 실뱀장어가 된다. 이 때 어민들은 이를 잡아 양식장으로 넘긴다. 강 하구에서 먹이를 먹기 시작하면 몸이 검은빛으로 바뀌어 어엿한 뱀장어가 되는데 역류하는 밀물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그러나 대부분 하굿둑으로 막힌 한국의 강들은 이러한 뱀장어의 상류 진출을 차단한다. 홍수 때 배수갑문을 연 틈을 타 용케 몇 마리가 위로 거슬러 올라가 작은 물고기나 곤충 등을 잡아먹으며 개울의 왕으로 군림한다.


6년쯤 낚시나 그물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으면 몸은 등과 배에 노란빛을 띠어 황뱀장어라 부른다. 그러나 실뱀장어 상태로 양식장에서만 자란 것은 등이 검고 배는 하얗다.
다 자란 뱀장어는 다시 알을 낳기 위해 이동을 시작한다. 강을 따라 내려가다 강 하구 기수역에서 두세 달 머물며 바닷물 적응 훈련을 하는데 준비가 끝나면 피부는 은빛으로 바뀌고 깊은 바다의 장거리 항해에 맞도록 눈과 가슴지느러미가 커진다. 약 6개월간에 걸쳐 3000㎞ 가량 떨어진 산란장으로 가는 동안 오직 감각과 본능에 의지한다. 낮에는 천적을 피해 수심 500~900m의

 꽤 깊은 곳을 헤엄치다 해가 지면 수심 100~300m의 비교적 얕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동하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위와 장은 퇴화해 거의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생식소가 채우는데 산란지에 도착한 이들은 4월부터 8월까지 그믐밤 수심 160m쯤 되는 곳에서 떼로 모여 삶의 마지막 향연을 벌인 후 최후를 맞는다. 바다에 살다 강에 알을 낳고 최후를 맞는 연어와는 정반대이다.


이들이 왜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애초 심해어였다가 하도 천적이 많아 육지로 피신해 살다가 알은 고향에 돌아와 낳고 죽는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금강 하구에서 실뱀장어잡이를 수십년 동안 했던 장항시장상인회 조수헌 회장은 하굿둑 막히기 이전에는 성어가 돼 바다로 알을 낳으러 가는 뱀장어를 하룻밤만에 한 드럼씩 잡기도 했다고 전한다.
“저 하굿둑을 터야 혀. 알 낳으러 가는 뱀장어가 없는디 실뱀장어가 잡히겄어?”

 

▲ 이불꿰는 바늘 모양의 실뱀장어 ▲그물을 끌어올린 후 실뱀장어를 가려내는 모습. ▲실뱀장어 주산지 금강하구에 들어선 군산복합화력발전소와 실뱀장어잡이 어선. 발전소 온배수 등의 배출로 실뱀장어가 거의 잡히지 않는다고 어민들은 말하고 있다. ▲어도 양편에 낀 이끼를 타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실뱀장어.(위쪽부터 시계반대방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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