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모시이야기
■ 모시장터-모시이야기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2.06.18 15:21
  • 호수 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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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살았던 옛집은 기산면 산정리 181번지이다. 거기에서 태어났고 거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밤이 깊으면 ‘철컥철컥, 철컥철컥’ 베틀 소리가 새벽까지 들려왔다. 감나무 사이로 비쳐오는 새벽 달빛은 유난히도 밝았다.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내 책상에서 오랫동안 있다가 갔다. 나는 달빛과 함께 베틀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깊은 밤 소쩍새 울음 소리는 어찌나 서러웠던지, 님을 만나 사랑하고 이별할 나이도 아닌데 어린 나에게 소쩍새 울음소리는 지금도 가슴을 저리게 한다. 법관이 되라던 선친의 바램과는 달리 가난한 시인의 길을 택했으니……. 고향 생각하고 선친 생각을 하면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언젠가는 어린 시절의 정겨움들을 시로 써야지 생각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서른이 되어서야 나는 대전 어느 자취방에서 시조 ‘한산초 - 모시’ 15수를 썼다. 그 때가 80년이었으니 족히 30년도 넘었다.


  백승수 시조 시인이 있다. 서천 중학교 때 그는 부산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그 때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부산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모시이야기’를 썼다. 그 작품이 1982년 시조문학에 추천되었다. 그는 84년에는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도 당선되었다. 나와 백승수는 같은 때에 우연찮게 고향 서천의 한산 모시를 소재로 해서 시조를 창작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와 백승수와 인연이 되었고 시조 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초?중학교를 서천에서 살았던 그와 나는 고향 충청도 서천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고 잊을 수도 없었다. 거기에는 한산 세모시라는 서러운 이름과 가난 때문이었다. 감꽃을 주워먹고 찔레순, 소나무순을 따먹던 어린 시절 듣고 보는 것이 매양 베틀소리요 길쌈이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얼마 전에야 그를 처음 만났다. 지면으로 안지 30년 만이었다. 알고 보니 서천 중학교 같은 동문이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선생을 했고 90년 대엔 문학박사를 취득해 대학 강단에 섰다. 어쩌면 나와는 같은 고향, 같은 동문, 같은 세대, 같은 타향, 같은 이력으로 동병상련이랄까, 그렇게 인연이 된 것이다.


  나와 함께 같은 시대에 같은 주제로 썼던 그의 시조 ‘모시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작품이다.

잔별밭 되 바래낸 세모시 오린 자락 / 솔기 없는 서녀 바늘 솔바람에 꿰어내면 / 꿈 고른 한 뜸 인연이 앙가슴을 누비네

옷섶을 만져보면 속삭임 새어나고 / 가녀린 차디찬 올 삭인 외롬 감은 눈매 / 금강물 그리움 돌아 하얀 꽃을 피우네
   -백승수의 ‘모시 이야기’ 4,5연

 

  서천엔 모시관이 있다. 모시관에 모시와 관련된 시비 몇 개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조의 명칭이 석북의 시에서 나왔으니 더더욱 그렇다. 모시각 앞에 신영락의 ‘백저사’ 시비가 홀로 모시관을 지키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될까. 임벽당 의성 김씨의 모시에 관한 아름다운 시도 또한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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