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봉! 그곳엔 자연의 숨결이 넘치고…,
장태봉! 그곳엔 자연의 숨결이 넘치고…,
  • 최현옥
  • 승인 2003.01.30 00:00
  • 호수 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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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 이끼, 고요함과 엄숙함, 동물의 발자국, 새소리, 파란하늘…’ 그속에는 백설에 묻힌 태고의 순수가 숨을 쉰다.


저수지, 기찻길, 작은 소나무, 생각만 해도 마음 가득 넉넉함을 불러오는 자연의 소품들을 지나 서천을 출발한지 20여분만에 도착한 곳은 판교.
한때 우시장으로 명성을 떨치며 부흥기를 맞았던 이곳은 70년대 이후 성장이 멈춘 듯 하다. 더딘 문명의 발걸음은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촬영지로 자리 매김하고 있으며 면소재지의 마을들은 태고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판교시내를 지나 눈이 채 녹지 않은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며 차체의 동요가 심해질 수록 미지에 대한 불안함과 희망은 뒤섞였다. 4km를 달려 월봉교를 지나 온통 갈색빛으로 손짓하는 이곳은 심동. ‘깊은 골’이라는 뜻에서 유래됐으며 대여 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엮어 가는 심동은 여름철에 반딧불이 발견될 정도로 청정지역이다. 심동의 깊은 계곡은 계절을 잊은 듯 한 겨울에도 얼음장 밑으로 청정수가 흘러 물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마침내 마주한 장태봉, 해발 3백66.5m로 흰색과 갈색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색으로 편안함과 아늑함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요함과 영원성의 승화
장태봉은 엄숙함과 고요함 그리고 영원성이다. 장태봉 입구에서 마주치는 납골당 영명각은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2001년부터 운영되는 납골당은 봉안능력 5천기로 현재 연고 1백87기와 무연고 1백6기가 있다. 연고마저 없이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장태봉에서 편하게 잠들기를 잠시 빌고 등산로를 올랐다. 등산로 따라 오르는 입구에서부터 등산객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 지난해 루사의 피해로 쓰러져간 나무들. 그것들의 시름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산 가득 빼곡이 들어선 나무는 세상의 미련을 버리듯 온몸을 헐벗고 영하의 날씨에 지상에 뿌리를 박고 있다. 성장을 최대한 억제하며 봄을 맞기 위해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나무들은 삶의 스승이다.
그리고 나무들이 그토록 사랑한엽들은 발밑을 스치며 새로운 생명력을 감지하게 한다. 삶의 깨달음을 안겨주는 장태봉은 인적이 없어 사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며 호젓하고 깨끗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숨소리가 들려온다
“뽀득뽀득, 바삭바삭”
산을 오르며 듣는 소리다. 눈이 녹은 곳과 녹지 않은 곳을 동시에 밟으며 오르는 장태봉은 가을산행과 겨울산행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원시 느낌의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구불구불한 등산로는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번갈아 있다.
이곳에서 등산객은 문명의 발이 닿지 않은 백설에 묻힌 태고의 순수를 만났다. 눈 위에 너무나 선명하게 자국난 새, 들짐승의 발자국에 놀라 숨을 멈췄다.
“바스락”
소리에 놀라 바라본 곳에서 산토끼와 눈이 마주쳤다. 먹이를 찾으러 나왔다 길을 잃었는지 산토끼는 눈을 한번 맞추고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다.
나무계단은 세월의 흔적을 이야기하듯 이끼와 버섯이 피어있다. 상수리도 즐비하다. 가질 만큼만 갖고 필요이상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는 동물들을 생각하며 잠시 자성한다.
“헉헉∼”
얼마나 올랐을까? 얼 듯 보기에도 만만해 보이지 않는 등산로는 등산객을 금방 지치게 한다. 숨이 거칠어 오고 땀이 난다. 심동의 청정지역, 산이 깊어지고 정상에 가까울수록 공기는 더욱 맑아진다.
등산객은 숨을 거칠게 내쉬며 폐부 가득 순수를 받아들인다. 고개를 들어 숨을 내쉬고 하늘을 보자 나뭇가지 사이사이 청명한 하늘이 보인다.
숨을 죽이고 들으면 새소리도 들려온다. 너무나 고요한 장태봉, 삶에 대한 꿈틀거림은 계속되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니
서천이 한눈에
산 정상에 가까울수록 눈은 사라지고 나무와 돌이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장태봉의 정상에 우뚝 서니 바람이 차다. 차디찬 청량제를 마시는 기분이다.
“야호∼”
오랜만에 목소리 높여 소리도 질러보고 넓은 세상도 가슴에 담아본다. 저 아래에서 아옹다옹 살아가던 삶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사방은 손에 잡힐 듯 서쪽으로 서면과 부사방조제가 보이고 동·북쪽에는 부여군 옥산면과 홍산면이 보인다. 남쪽으로 서천과 장항, 날씨가 좋은 날은 군산까지 보인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산은 그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끝없는 아량으로 감싸주는 산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함을 주고 있다. 발 밑으로 보이는 심동리는 동화 속 한 장면 같고, 봄을 준비하는 철쭉과 진달래는 생명을 속삭인다.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더러운 것들을 청명한 하늘에 꺼내어 씻어내고 미래를 담았다.
장수의 무덤은 어디요?
정상에 올라 장수의 무덤을 찾아본다. 세상을 구할 천명을 안고 태어났으나 때를 잘못 만나 미명 하에 죽어간 장수. 때는 고려 말엽이었다. 왜구의 침입으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 하늘에서는 세상에 빛을 줄 장수를 장태봉에서 태어나도록 했다. 그는 태어나 생식을 하며 힘을 길렀고 하늘의 가르침을 받들어 성주산 너머로 세상을 구하러 떠났다. 그러나 김장군이 왜구를 소탕한 것을 보고 이에 실망하여 난폭하게 변하였다. 아낙네들을 농락하고 세상을 어지럽혔다. 이에 젊은이들이 그를 죽였으나 그가 세상을 구할 정기를 타고 태어난 것을 불쌍하게 여겨 산 정상에 묻어주었다.
사람에게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비관에 빠지기도 쉽고 자만하기도 쉽다. 세상살이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찾기에 장태봉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태봉과 혼연일체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장태봉을 하산하며 등산객은 어느덧 들짐승이 되어있다. 백설에 묻힌 태고의 순수를 만나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내려오는 길은 더욱 미끄럽다. 주위를 하지 않으면 낙상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편리함과 안락함으로 쉽게 무엇이든 취할 수 있는 물질문명 속에서 절제되고 조신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권하는 듯 하다.
어머니 품속 같이 아늑함으로 안아주다가 단호함을 가르치는 장태봉에서 등산객은 산을 가슴속 깊이 받아들였다.
산을 내려와 동네어귀에서 만난 주민이 돼지고기 구웠다며 소주 한잔하고 가라는 말에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들의 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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