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눈의 천사(1)
파란눈의 천사(1)
  • 뉴스서천
  • 승인 2003.03.06 00:00
  • 호수 1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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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크렝캉, 크레카 그리고 강진수
4월 12일
내가 신부님을 처음 만난 날입니다.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날이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죠.
전날 밤까지 계속되던 열이 아침이 되자 정말 신기하게 내렸습니다.
엄마는 “우리 선우 생일인 거 알고 열이 내렸네. 고맙다.” 하시며 좋아하셨어요.
“엄마, 누구에게 고맙다고 그래? 열이 내린 건 나라구. 나한테 고맙다는 거야?”
“그렇지. 우리 선우가 고맙지. 어려운 치료 잘 견뎌주니까 엄마가 고맙지.”
엄마는 내가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늘 눈가가 젖어있었는데... 오늘만큼은 눈이 웃고 있었어요. 참 반가웠어요. 엄마의 웃는 얼굴이.
10시가 되자 엄마 친구 미숙이 아줌마가 케이크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아줌마는 동화책 몇 권도 함께 사오셨는데 엄마에게 들어서인지 내가 꼭 읽고 싶었던 책을 가져오셨어요.
엄마와 아줌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죠.
루디라는 주인공 돼지가 경주에 나가서 막 일등으로 달리고 있는 재밌는 대목을 읽고 있는데 아줌마가 그만 돌아가봐야겠다고 일어섰습니다.
“아줌마 배웅하고 와도 돼?” 하고 물으며 엄마는 내 얼굴을 살폈어요.
“그럼.” 하는 내 대답에 엄마는 “오늘 우리 아들 정말 이쁘다. 다른 땐 엄마 꼼짝도 못하게 하는데. 일년 내내 생일이면 좋겠다.” 하시며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셨어요. 머리카락이 하나도 남지 않아서인지 엄마 손의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엄마와 미숙이 아줌마가 내려가고 나서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어요.
지금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라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어요.
맛있는 거 많이 싸왔다면서 할머니는 병실이 몇 층인지 물으셨습니다.
12층이라고 알려드리고 다시 책을 집어들었는데 웬일인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병실을 잘 찾으실 수 있으실 지, 또 지난번처럼 엉뚱한 병실에 앉아 오랫동안 기다리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어요. 서랍에서 모자를 꺼내 쓰고 눈만 내놓을 수 있는 커다란 마스크도 썼어요. 그리고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걸어갔죠.
“선우, 어디가니? 조금 있다 약 먹어야되는데?”
언제 보았는지 김간호사 누나가 날 보며 소리쳤어요.
“할머니가 오신다고 해서요.”
마스크가 축축이 젖도록 크게 말했는데도 김간호사 누나는 못 알아들었어요. “어디간다고?”
“할머니!” 나는 다시 한번 할머니라고 소리쳤어요.
“응, 할머니가 오시나보구나. 그래 조심하구 내려갔다 빨리 와야해. 이 약 시간 맞춰서 먹어야 하는거 알지?”
나는 대답 대신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었어요.
12층에서 탈 땐 혼자 이었는데 사람들이 계속해서 타는 바람에 나는 맨 뒤에 서 있어야 했어요.
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갑자기 현기증이 났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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