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명예와 인간에 대한 예의
아파트의 명예와 인간에 대한 예의
  • 심재옥 칼럼위원
  • 승인 2014.12.01 16:43
  • 호수 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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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 아저씨 한 분이 입주민의 모욕적인 언행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주차장에서 분신하는 일이 있었다. 그 입주민은 평소에 경비원들에게 폭언을 일삼았고 분리수거 때마다 일일이 참견하며 일 못한다고 타박을 하기도 했다 한다. 또한 지나가는 경비원을 불러 짐승에게 먹이를 던지듯이 5층에서 먹다 남은 떡을 던져주기도 했다 한다. 혹독한 폭언과 모욕을 견디다 못한 경비 아저씨는 자신이 일하던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분신했고 한 달 만에 결국 사망했다. 폭언의 당사자로 지목되었던 70대의 할머니는 사회적 비난이 끊이지 않자 경비원의 빈소에 찾아와 뒤늦게 통곡하며 유족들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무엇보다도 유감인 것은, 경비원의 죽음에 대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사과나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시종일관 개인적인 갈등으로 치부하며 도의적 책임조차도 부인하는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경비원의 죽음이 그 아파트의 주민들의 평소 권위적 태도와 비정한 문화로부터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입주자대표회의는 돌아가신 경비원의 장례가 치러진 뒤 그 분과 함께 일했던 동료 경비원 78명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경비원의 분신으로 ‘아파트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게 해고의 이유라고 한다. 경비원의 분신 사망이 아파트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면서 ‘아파트의 명예’ 실추의 책임을 경비원들에게 묻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게다가 ‘아파트의 명예’라니. 한 가정의 가장들일 경비원들의 생존권 보다 더 중요한 아파트의 명예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명예란, 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얻은 좋은 평판이나 이름”을 일컫는다고 사전에는 씌여 있다. 강남 아파트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면 결국 그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의 평판이 나빠졌다는 얘기일 터,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아파트 값 떨어질까 걱정했던 입주민들의 비정함이 아파트의 명예를 망친 진짜 원인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좋은 직업, 비싼 아파트, 외제차로도 명예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24시간 맞교대 근무로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임금은 최저임금의 90%만 받고 있다. 말 그대로 안전과 보안을 위한 ‘경비’ 업무는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에서 최저임금의 적용을 미뤄왔던 탓이다. 법대로라면 경비원들은 아파트에 설치된 CCTV 모니터를 지켜보거나, 순찰 돌기, 외부인들의 출입관리만 잘하면 그만이다. 주차관리에 쓰레기 분리수거, 조경수 관리, 여름철 음식물 수거통 씻기, 입주민들의 택배를 맡아 주거나 소소한 부탁들은 안 해도 된다. 그래야 최저임금의 90%만 주는 것이 말이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법을 아는 사람들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아파트 경비원들을 포함해 경비, 시설관리 업무를 하는 ‘감시단속 노동자’는 내년부터 최저임금의 100%를 적용 받는다. 지금까지 아파트 경비원들의 낮은 임금과 과도한 업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주민들이 자신들의 관리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 때문에 경비원들을 해고하거나 휴게시간을 편법적으로 늘려 저임금으로 묶어두자는 주장에 동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지금까지 부당하게 착취해왔던 경비원들의 노동을 앞으로도 착취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대별로 한 달에 평균 커피 두 잔 값의 관리비 인상이면 아파트 경비원들의 임금이 정상화될 수 있다. 그래봐야 알바들에게도 적용되었던 최저임금이 비로소 적용될 뿐이지만 말이다.

아파트 명예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정작 그 아파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은 무시되는 현실이다.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에서 노동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바로 생존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나의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면 타인의 노동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그나마 있는 명예를 지키는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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