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돌봄노동을 존중해야 아이들이 존중받는다.
■모시장터/돌봄노동을 존중해야 아이들이 존중받는다.
  • 심재옥 칼럼위원
  • 승인 2015.02.02 10:41
  • 호수 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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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의 어린이집 보육교사 아동학대 문제와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여러 대책들을 보면서 나는 아주 오래 전의 어떤 일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우리 아이가 뱃속에 있었을 때였으니 근 10년 전의 일이다. 나는 당시 서울시의원 일을 하고 있었고 불러오는 배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온갖 일정으로 동분서주하곤 했었다.

산달이 다가오던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나와 친한 한 여성단체의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된지라 나의 임신 사실도 처음 알게 된 그 대표는 나의 모습을 보고 꽤나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래서였는지, 그 대표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인사 보다 먼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쩌려고 애를 낳아요? 이런 무모한 사람을 봤나!”
그렇게 말하는 그 대표의 얼굴은 분명히 웃고 있었고, 늦은 나이에 애를 가진 나를 절대로  비난하거나 흉 보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꽤나 섭섭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늦은 나이에 아이 가진 용기가 가상하다고 좀 해주면 안되나?’ 진심으로 걱정스러워 죽겠다는 대표님의 당부의 말도 건성으로 받아 넘겼다. 

그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때 나를 섭섭하게 했던 대표님의 그 말이 자꾸 생각났다. 아이가 세상에 나온 이후 나의 삶은 아이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아이 때문에 일과 일정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거듭되면서, ‘아, 나는 정말 무모했구나. 무모하지 않으면 애 낳기 힘든 세상이구나.’라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돈도 없고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모두 애를 돌봐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애도 잘 키우고 일도 계속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자체가 무모함 맞다. 아이 키우는 일을 온전히 가정에만 맡기고, 그것도 여성들에게 떠넘기는 이 사회에서 출산은 무모할 만큼의 용기있는 여성 아니면 안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10여년 동안, 세상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기쁨을 얻었지만 그것은 내가 가진 많은 것을 버려야만 가능하다는 깨달음도 함께 얻었다. 일 욕심도 버려야 했고 사회적 성장이라는 욕망도 버려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를 중심에 놓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하는 일상 자체가 나를 버리는 가장 힘든 과정이었다.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읽어내고,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아이의 행동을 참아내면서 먹고 자고 입고 놀고 하는 일상을 챙기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노동’이었다. 심지어 엄마조차도 감내하기 힘든 '감정노동‘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힘든 육아를 감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접은 참으로 박하기만 하다. 아이 돌보는 사람에게 ‘집에서 쉬냐?’라고 묻는다던가 일 못하는 사람에게 ‘집에 가서 애나 봐라’라는 말들은 아이 돌보는 일을 얼마나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일로 여기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 돌보는 일은 ‘일’이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쯤으로 여기는 거다. 이 건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최근에 벌어진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의식 밑바닥에 깔려있는 돌봄노동에 대한 부당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돌보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고 그런 만큼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사이버강의 몇 시간 듣는 것만으로 교사자격을 따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질없는 보육교사들을 걸러내고 제대로 훈련된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환경과 처우를 마련했다면, 적어도 아동학대가 이렇게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3년에 비해 2014년에 15%가 늘어난 273건이나 발생했다지 않은가.

정부가 진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보육교사들은 하루 평균 9.3시간을 일하면서 월 평균 131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아동학대 발생 원인으로 직무스트레스와 과다한 업무를 가장 우선으로 꼽았다고 한다. 돌봄과 보육의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공적시스템을 만드는 대신 영세한 민간 개인운영자들에게 어린이집을 맡긴 결과이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CCTV 의무화하고 교사들 임용고시를 보겠다는 것이다. 원인은 딴 데 두고 남의 다리 긁고 있는 격이다.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할 줄 아는 법이다. 아이들의 인권이 정당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면 보육교사들의 노동도 정당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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