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눈의 천사(25)
파란눈의 천사(25)
  • 뉴스서천
  • 승인 2003.09.05 00:00
  • 호수 1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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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나와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나와 똑같은 모양의 주사 줄을 달고서 찾아온 손님은 바로 신부님이었습니다. 신부님은 많이 달라져있었습니다.
양 귀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내려오던 머리카락도 많이 줄어있었고 볼은 움푹 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파란 눈엔 여전히 미소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나 수술했어요. 비장을 많이 잘라냈어요.”
“힘들어 보이셔요.”
엄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아주 많이 힘들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우리 병실에 친구들이 아주 많거든요.”
“어떤 친구들인데요?”
나도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가며 물었습니다.
“아, 모두 똑같지요. 뭐, 암 친구들.”
“네에? 암 친구들요? 하하하”
신부님은 정말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5분만 함께 있어도 즐거워지니까요.
엄마는 나를 휠체어에 태워 12층 야외 휴게실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물론 신부님과 함께요.
우리는 한참동안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걸어가는 사람, 달려가는 사람, 택시 타는 사람, 버스 타는 사람들이 작게 보였습니다.
“신부님, 저는 요 여기에 올 때마다 기도를 해요.”
“무슨 기도할까?”
신부님은 장난꾸러기처럼 두 눈을 감고 생각하는 모양을 했습니다.
“저기 저 사람들처럼 버스를 기다리고 싶다고요. 그렇게 해 달라고요.”
“아하, 그렇구나. 그럼 우리 좀 더 나으면 함께 버스 타러 갈까?”
“좋아요. 그런데, 어딜 가지요?”
“음, 어디가 좋을까? 어딜 가볼까?”
“하하하, 우리 그냥 버스 타고 딱 세 정거장만 가기로 해요. 그런 다음 그곳에 내려서 또 다른 버스를 타는 거예요. 그 다음엔 네 정거장을 가고, 그 다음엔 다섯 정거장을 가고.”
“재미있겠다.”
아이처럼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신부님은 정말 친구 같았습니다.
“신부님, 우리 비행기 접어서 날려볼래요? 일곱 살 때 엄마랑 연우랑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비행기 날려본 적 있었어요. 그때가 새 해 첫날이었는데요, 비행기에 소원을 쓴 다음 날렸어요. 그런데 하느님은 제 소원만 들어주었어요. 엄마하고 연우 소원은 안 들어주셨어요.”
“선우 소원이 뭐였는데?”
“컴퓨터 사는 거요. 엄마 소원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사는 거였고요, 연우 소원은 나랑 함께 태권도 학원 다니게 되는 거였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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