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와 주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
닭을 키우다 보면 천적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끼치는 놈이 서생원 쥐다. 알도 물어가고 햇병아리도 물어간다. 어미닭도 파먹는다 한다.
고양이, 개도 닭을 잡아먹는다. 병아리가 울 밖으로 나오면 이들의 공격 대상이다. 너구리가 닭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족제비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담비가 닭 맛을 보면 닭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토끼는 닭을 해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맛있는 풀만 먹고 산다. 지천에 널린 풀 중에서 맛있는 풀만 골라 먹을 수도 있다.
뉴스서천에 ‘박일환의 낱말여행’을 연재하고 있는 박일환 시인이 두번째 동시집을 냈다. 제목은 <토끼라서 고마워>. (도토리숲 출판사)
나는 겨우 토끼
사자나 호랑이는 못되고
하다못해 너구리나 고양이도 못되는
나는 그냥 겁만은 토끼야
나는 겨우 토끼야.
곰처럼 힘이 세지도 못하고
원숭이처럼 나무에도 못 올라가고
여우처럼 꾀가 많지도 않고
나는 그냥 한심한 토끼야.
그래도 나는 토끼라서 고마워.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앞니로 홍당무를 갉아 먹고
두 귀를 쫑긋 세울 때
아무도 나를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토끼 보러 가자는 말은 해도
토끼를 피해 도망가자는 말은 안 하니까.
누구에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는 토끼라서 정말 고마워.
<'토끼라서 고마워' 전문>
나약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 이러한 토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박일환 시인은 1992년 전태일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을 받았으며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서 시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푸른 삼각뿔>, <끊어진 현>, <지는 싸움>, <등 뒤의 시간>, 동시집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청소년 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 <만랩을 찍을 때까지>, 장편소설 <바다로 간 별들>을 펴냈다.
그는 30년 동안 국어 교사 생활을 하면서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청소년을 위한 시쓰기 공부>, 교육산문집 <나는 바보 선생님입니다>와 교육시집 <덮지 못한 출석부> 등을 썼으며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청소년 이야기를 다룬 <위대하고 아름다운 십대 이야기>를 펴냈다.
동시집 <토끼라서 고마워>는 4부로 나뉘어 모두 54편의 시가 실려 있다. 박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정직한 걸음으로 약속을 어기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며 “봄처럼 세상 만물을 따스히 감싸주는 손길은 되지 못할지라도 깜냥껏 제몫을 다하고, 동시를 쓰는 일도 그런 몫의 하나라는 걸 잊지 않으려 두 번째 동시집을 엮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