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마을의 품격 4. 공덕 마을 총회
■ 모시장터 / 마을의 품격 4. 공덕 마을 총회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3.07.13 12:31
  • 호수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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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칼럼위원
최용혁 칼럼위원

마을의 주산, 공덕산을 허물어 토석을 채취하겠다는 사업 신청으로 마을은 온통 뒤숭숭하다. 의견은 분분하고, 끈적한 바람이 흉흉하다. 엇비슷한 뜻도 강약과 완급에 따라 각각씩 분파를 형성하고 편을 가른다. 의심과 편견과 선입견이 넘친다. 말이라도 예쁘게나 하나? 경운기 농약 줄 잡는 각시에게 소리 지르듯이 고성은 기본, 욕설과 상처를 주는 말도 가리지 않는다. 우리끼리도 정신 못차리는데 별의별 거간꾼까지 끼어서 온갖 훈수와 이간질을 일삼는다. 군사로 따지면 오합지졸, 집안으로 따지면 콩가루라 못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21세기의 충격을 견디기에 시골 마을은 오래 전부터 너무 늙고 어리석고 닫혀 있었다. 45세대 80여 명의 사람 중에 가상 화폐를 아는 사람이 있나? AI가 불러온 신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나? 지구 기온 상승으로 우리 다음 세대들이 겪게 될 불행에 맞서는 것을 어른의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나? 마을은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오지 못했고, 다가온 어떤 충격에도 아-마을은 카오스다.

무엇이 닥쳐 있는 일이고 무엇이 다가오는 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린 어리석지만, 마을 산봉우리가 없어진다는 상상은 AI나 가상화폐보다 훨씬 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충분히 헤매고 난 후, 정신 똑바로 못 차리면 마을 뒷산 봉우리가 정말로 날아갈 수도 있겠구나! 발등에 기어이 불이 떨어졌을 때, 우리는 마을 총회를 열었다. “오고 싶은 사람만 오시오!” 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보행기를 앞세우고 한 분도 빠짐없이 다들 나오셨다. 말로 떡을 하면 조선 사람들이 다 먹고도 남는다. 우리는 말잔치를 끝내고 다음의 몇 가지를 결정했다.

1. 공덕산 토석채취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
2. 현수막을 달 것
3. 627일 군청 신청사 앞에서 집회를 할 것
4.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 할 것

총회 결정에 따라 마을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회관 앞과 마을 곳곳에는 시뻘건 현수막이 걸린다. 새벽, 아침 일이 하루 일의 전부인 한여름에 아침마다 군청 앞 1인 시위를 나간다. 2인이 서 있으면 신고를 당할 수도 있다고 나이 먹은 청년 회장은 자꾸자꾸 당부한다. 여러 마을과 힘을 합쳐 집회를 한다. 말을 줄이고 할 일을 정하니 다들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기껏 개발 사업 신청 하나에도 마을은 흔들린다. 겨우겨우 견딜 만큼 충분히 힘이 없지만, 마을은 견디고 살아남는 지문을 가지고 있다. 불친절한 시대와 세월 앞에서 마을 공동체는 동학군과 관군, 국군과 인민군도 녹여 오며 벼텨왔다. 더 더럽고 더 지독한 것들도 기어코 버무리고 썩혀서 우리 삶의 방식을 가까스로 지켜왔다. 서천군에는 이처럼 늙고 어리석고 꽉 막힌 300여개의 마을이 있다.

검토해야 하는 법률과 상식과 정서가 상당히 복잡하게 우리 주위를 구성하고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 허물어지지만 않는다면 결코 남이 우리를 허물 수 없는 법이다. 마을은 무너지지 않는다. 공덕산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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