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께서 40대 초반에 해주 석담서당에서 쓰신 자신의 책 격몽요결 입지장 초두에서 공부의 시작을 이렇게 밝히신 바 있으시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우되<초학선수립지初學先須立志> 반드시 성인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필이성인자기必以聖人自期>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소홀히 여기거나 핑계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불가유일호자소퇴탁지념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
본래 이 문장은 율곡 선생께서 십 대 때 스스로를 경계하여 지은 글인 12자경문自警文 1항에 나오는 말이며 10대의 다짐을 40대에 글로 풀어낸 명문으로, “공부는 성인 공자를 기준하라” 는 횡거 장재 선생의 가르침에서 시작된다.
성인을 목표로 세워서 공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생활주변에 성인聖人이라 우러러볼 만한 분이 없는 탓에 배움에 기본이 되는 규規와 준準을 세울 수 없어서이다. 이를 알고 걱정한 이가 공자님의 말째 제자 증자인데, 증자는 공자 사후 후학들이 성인을 준칙으로 삼아 공부하는 기준을 세워놓으신 분이다. 그리하여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마쳐야 하는가를 손수 정리하여 후학에 전하였는데 곧 대학 책에 그 내용 일부가 적혀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그것으로 훗날 우암 송시열은 몽와 김종수에게 중용을 강하면서 이 부분을 끌어와 말하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종성 증자께서 성인 공자님을 본받는 공부의 시와 종을 밝혀놓은 글이다”라고 전한다.
고금을 무론하고 제자의 질문은 늘 “어떻게 공부해야합니까”이다. 주자는 중용23장 치곡장의 예를 들어 날마다 작은 공부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큰 공부를 이룰 날이 온다고 했다. 태어난다는 것은 많은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이러한 많은 책임들을 감당하는 힘을 주는 것이 공부다. 그것도 어려서의 공부가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공부는 대학 증자의 말처럼 수신으로 시작되어 치국을 거머쥔 뒤 평천하에 이르러야 비로소 공부의 마침이 되는 것이다. 이를 ‘진명사해盡名四海’라 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부모님의 이름을 사해에 떨친다는 말이다. 증자는 이를 효도의 마침이라고도 했다. 곧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것은 효도가 됐다는 말이다. 공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문장을 좀더 쉽게 풀어쓴 것이 초학서 추구집에 있는 데, 이르기를 ‘십년등하고十年燈下苦 삼일마두영三日馬頭榮’이라는 말로 함의를 했다. 해석하면 각고의 노력으로 10년을 공부하여 등과가 되면 비로소 말을 타고 마을로 돌아와 3일 동안 잔치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유능한 농부라 할지라도 심은 것이 없는 데서 거두는 일은 없으며 노력 없이 이루는 성공은 없는 법이다.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공부는 일정량을 자기와의 싸움이 존재한다. 남과 싸워서 이긴 사람은 분명 쎈? 사람은 맞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긴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공부는 남과의 싸움 곧 경쟁에서도 이겨야 하고 그걸 견뎌내고 공부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공부는 똑똑이 유무를 떠나 얼마만큼 열심히 노력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제자도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공자님께서 제자 자공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와 안회 중에 누가 더 나으냐?” 질문받는 제자로서는 참 난감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논어5-8문장의 기록은 이렇다.
“공자께서 자공에게 이렇게 물었다.<자위자공왈子謂子貢曰> 너와 안회를 비교하면 누가 더 낳을까.<여여회야숙유女與回也孰愈> 자공이 대답하였다.<대왈對曰> 저같은 자가 어찌 안회를 감히 쳐다나 볼수 있겠습니까.<사야하감망회賜也何敢望回>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회야문일이지십回也聞一以知十>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정도입니다.<사야문일이지이賜也聞一以知二>
그렇다, 공자님의 제자 중에 공부를 가장 많이 한 인물은 안회이고 그다음이 자로이며 자공은 공부가 부족한 탓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거부가 된 인물이다. 역사는 이런 자공을 ‘유상儒商’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