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63) / 달러길미와 갑변(甲邊)
■ 박일환의 낱말여행 (63) / 달러길미와 갑변(甲邊)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10.05 07:18
  • 호수 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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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대금 관련 낱말들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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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사챗돈은 쓰지 말라고 한다.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채는 애초에 경제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주고객인 데다 이자가 높아 연체하기 쉬운 조건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게 신체포기각서 같은 것일 테고, 채무자에 대한 폭행과 납치를 일삼는 악덕 사채업자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낯선 낱말부터 살펴보며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하자.

달러길미(dollar길미): 날로 계산하여 일정하게 무는 이자. =날변.

매일 이자를 갚아가는 걸 말하는데, 달러 다음에 붙은 길미라는 낱말이 낯선 느낌을 불러온다. 동의어로 처리한 날변 말고 달러이자라는 낱말도 따로 표제어에 올라 있으며, 일수(日收) 혹은 일숫돈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길미는 본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이자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달러이자라는 말이 사용된 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반면 달러길미가 쓰인 예는 찾기 힘들다. 어디선가는 사용된 예가 있어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자의 눈에 띄었겠지만 용례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달러를 예전에는 흔히 딸라라고 발음했으며, 그걸 입말 그대로 표기하곤 했다.

전쟁과 더불어 딸라장수가 크게 성하고 일수변대신에 딸라돈’ ‘딸라변이라는 무서운 고리대금이 생겼다.(동아일보, 1963.8.15.)

김씨는 시장 내 영세상인들이 일수딸라변 등 비싼 고리채에 허덕이는 안타까움을 보아넘길 수가 없었다.(매일경제, 1977.10.15.)

이사한 이튿날 주인 아낙이 와서 혹시 돈 3천 환 있으면 급히 쓸 사람이 있으니 꾸어주면 딸라이자를 받아주겠다고 했다.(경향신문, 1978.6.9.)

동아일보 기사는 해방 후 새로 생긴 말들을 소개하는 내용에 나오는 대목이고, 매일경제 기사는 원주에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게 된 배경을 소개하는 내용에 나오는 대목이다. 딸라이자보다는 딸라돈과 딸라변이라는 낱말을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두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은 이자를 뜻하며 한자이며, 표준국어대사전은 달러돈만 표제어로 올렸다.

달러돈은 하루에 원금의 1%씩 이자를 물렸다. 30%에 해당하는 고금리인 셈이다. 이자가 너무 세다 보니 매일 0.5% 이자만 받는 반딸라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토록 터무니없는 이자가 옛날에도 있었을까?

갑변(甲邊): 1. 고리대금업자들이 본전에 곱쳐서 받는 높은 변리. 돈을 빌린 사람이 제 달에 갚지 못했을 때에, 한 달이 지나면 두 배, 두 달이 지나면 세 배로 받는다.

2. <역사> 조선 시대에, 한 달에 10할 이상의 이자를 받던 일. 공채(公債)사채(私債)를 막론하고 2할 이상의 이자를 받는 사람은 장() 80대와 2년의 도형(徒刑)에 처했으며, 사적으로 갑변을 받는 사람은 장 100대에 처한 후 정배를 보냈다.

 

갑변은 그야말로 사람 잡는 이자놀이인 셈이다. 조선시대에도 지나친 고리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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