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천고마비의 계절에 읽는 춘추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천고마비의 계절에 읽는 춘추
  • 뉴스서천
  • 승인 2023.10.13 11:03
  • 호수 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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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서천서당 훈장
송우영/서천서당 훈장

기원전 722년 당시 노나라 군주는 은공이다. 공자님께서는 춘추 책을 찬고纂古하시면서 은공 원년 춘왕 정월隱公元年春王正月 이라고 기록한다. 그러고는 더 이상 이렇다 할 부언설명이 없다. 춘추 책을 읽는 사람이 당황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춘추 책은 글자가 아까워서 더 쓰지 못했다는 언어의 결벽증 환자라는 인상이 강할 만큼 앞뒤 맥락이 없다. 그런 탓에 읽기가 난해하다. 춘추 책 전체가 이런 식이다. 문장 자체가 절장切章이라서 가르침 없이 혼자 읽기는 하되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책이다.

공자님께서는 이정도의 기록만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셨다는데 후학으로서는 도대체 뭘 어떻게 가르치셨는지는 전적의 기록을 찾을 길 없다. 다만 유추해보건데 펼연될화자를 써서 연화演化론적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뿐이다. 연화는 몰라도 들어두면 언젠가는 알게 되는 독문讀聞법을 말한다. 이렇게 배운 제자들은 각지에 다니면서 춘추를 가르치는데 경전이 너무 심오하고 어려운지라 나름의 해설을 덧붙여 가르쳤고 훗날 밝은 후학들이 나와서 이러한 해설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는데 역사는 이를 <춘추삼전>이라 했다. 곧 춘추 책을 해석한 세 권의 전이라는 말이다. 춘추 곡량전이 있고 춘추 공양전이 있고 춘추 좌씨전이 그것이다. 이중에 분량이 가장 많은 것은 춘추 좌씨전이다.

좌씨전은 춘추 해설서라기보다는 역사적 배경을 사실史實적 기록한 글쓴이의 어마어마한 유식함을 자랑한 문체다. 또 춘추 책은 무슨 연유에 선지는 모르나 글자 체도 아주 작고 흐릿하게 썼다. 하여 이를 작을 미, 흐릴 미 자를 써서 미언微言이라 하는데 작고 흐릿한 기록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공자님의 기록을 그렇게 낮춰 부르기는 후학으로서는 불경스러운 일임에 분명할 터, 하여 미언微言이라는 단어를 해석하기를 작을 미를 은미하다 또는 심오하다는 의미로 하여 은미하면서도 심오한 기록으로 이해하는 게 통설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미언대의微言大義고사이다. 곧 미언微言에서 대의大義를 읽어낼 수 있어야 제대로 춘추를 읽었다고 하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한 마디의 말이라도 그것으로 인해 여러 수의 상수와 변수를 상책 중책 하책으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정치적 언어쯤 되는 말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이 말은 조선 사대부가에서 홍문관 교리나 대제학, 또는 목민관이나 중앙부처 관료를 꿈꾸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교육에 있어서 비껴갈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춘추 책 한 권이면 문사철文史哲을 일목요연하게 꿰기에 충분하다. 이를 알기에 사대부가에서는 아들에게 특정 기간을 두고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글자만 깨우치면 알든 모르든 막무가내로 읽어야하는 책이다. 논어나 맹자의 경우는 9세부터 시작되어 12, 늦으면 15세까지는 꼭 읽기를 마쳐야 하는 책이다. 그러나 춘추 책은 기한이 없이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하는 책인 것이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뜻이 심오하다 보니까 지금은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읽다 보면 어느 날쯤엔가 공부의 깊이가 더해지고 이해가 웅숭해지면 그제 서야 춘추의 뜻이 보인다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의 위략魏略에 나오는 고사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의 실사판인 셈이다. 책 읽기를 백번쯤 하면 얼추 내용이 보인다는 말이다. 이것은 사기를 쓴 태사공 사마천의 공부법인데 사마천이 어려서 공부할 때 필요가 있든 없든 좌우간 글자로 된 것은 그게 뭐가 됐건 무조건 우선은 외우고 본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걸 왜 외우느냐며 면박을 주면, ‘어느 구름에 비 올지 어떻게 아는냐는 식으로 무작정 외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한다. 한번은 잊어버릴까봐 읽고, 또 한 번은 잊지 않기 위해 읽고, 또 한 번은 읽는지 못 읽는지 확인하느라 읽고. 이 정도라 하니 기염을 토할 지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공부를 집지執贄공부 또는 집착執着공부라 한다.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 마치 혼이 빠져서 넋 나간 사람모양으로 덤벼야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가을 날씨를 일러 가장 공부하기 좋은 때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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