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어려서부터 천하에 뜻을 두고 공부하라
■ 송우영의 고전산책 /어려서부터 천하에 뜻을 두고 공부하라
  • 송우영
  • 승인 2023.10.16 09:00
  • 호수 11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우영/서천서당 훈장
송우영/서천서당 훈장

청장관 이덕무는 자신의 책 사소절 동규 편 제 4장 사물事物 장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집안의 작은 일이나 익히고<관어규방령쇄지사慣於閨房零碎之事> 동네의 몹시 나쁜 말이나 익히고<습어려항외비지언習於閭巷猥鄙之言>, 능히 성현의 글을 찾아 살피지 아니하고<불능심역성경현서不能尋繹聖經賢書>, 어진 스승과 이로운 벗을 찾아 공부하지 아니하면<부득친자량사익우不得親炙良師益友> 이것을 일러 자포자기하는 것이다.<시위자포자기是謂自暴自棄>”

조선시대 선비였던 이덕무는 출신 성분이 서자인 탓에 벼슬에 이르기가 꽤 곤란한 처지였다. 물론 그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벼슬은 안중에도 없고 그럼에도 공부는 상당한 식견을 가졌다. 오로지 독학만으로 경전을 비롯 13경 주소를 깡그리 암기할 정도로 고금의 기문서에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참고로 조선 사회에 13경 주소를 모두 암기할 정도의 인물을 꼽는다면 귀봉 송익필과 우암 송시열을 들기도 한다.

암튼 그때의 나이가 약관 스물에 갓 못 미쳤다. 실로 대단한 공부 이력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으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일러 책만 읽는 바보라는 미칭의 간서치看書癡라 했겠는가.

고금을 무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결코 버려두는 일이 없다. 반상의 구별이 엄한 조선 시대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출신 성분이 서자여서 크게 중용되지 못했지만 규장각 검서관으로서 그간의 쌓은 공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가 쓴 책만 해도 자신의 키 몇 번을 훌쩍 넘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남아로 태어나 원도 한도 없이 마음껏 공부하다가 간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송나라 말기에서 원나라 초기까지 활동한 대학자 방몽괴方夢魁는 북송의 거유 사량좌謝良佐의 재전 제자의 문도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 세상 아들로 태어나서 행복한 순간이 몇 번 있는데 그중에 으뜸은 어려서 공부를 많이 해서 천하 제일의 명성을 듣는 것이다.”

세상은 이런 그를 일러 교봉蛟峯선생이라 불렀다. 용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그에 준하는 봉우리까지는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러면 청장관 이덕무나 교봉 선생 방몽괴는 어려서부터 왜 그리도 많은 책을 읽어가면서 공부를 해야 했을까. ‘명부정名不正 언불순言不順이라 했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다면 말은 순리에서 벗어나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공자님께서 위나라에 계실 때 제자 자로의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 나온 말이다.

자로가 물었다. “만약에 위나라 영공께서 선생님을 등용하시어 정사를 맡기신다면 선생님께서는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에 공자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하겠노라.<필야정명호必也正名乎-논어자로편>” 그러자 자로는 의아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왜 하필이면 이름을 바로 잡겠다는 겁니까?” 그러자 공자님은 무식하도다, 자로여<야재유야野哉由也>” 라고 탄성을 울리시고는 말씀하셨는데 공자님 말씀이 다소 정치적이고 심오한지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쓰면 각자 그 지위나 신분에 따라서는 저마다의 맡은 바 일이 있다는 말씀이 그 요지다. 곧 공부하는 자녀의 대의명분은 공부하는 것이라는 말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자녀가 어려서 해야 할 일은 오로지 공부가 전부다. 율곡 이이 선생께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왕 공부하는 거 먼저 뜻을 세우고 공부하라 권하신다. 소순은 아들을 공부시킬 때 우선은 천하제일문장을 목표로 두고 공부를 시켰다 한다. 아들들이 천하제일 문장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중 한 아들이 소동파 시인인 것은 분명하다.

대학을 쓴 증자는 공부하는 순서를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수신을 먼저하고 수신이 다 됐으면, 제가를 할 것이며 제가가 다됐으면 이제는 치국을 할 것이며 치국이 다 됐다면 그때는 비로소 평천하를 하라.”

이것이 옛사람이 말하는 공부하는 법이요 순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서의 공부라는 것은 천하에 뜻을 두고 공부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천하에 뜻을 둔 자녀라면 입으로는 거친 말과 나쁜 말을 삼가하며 몸으로는 사소하거나 자잘한 것들에 대해서는 도량이 넓은 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