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 (83)물풀매
■ 박일환의 낱말여행 / (83)물풀매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4.03.14 09:35
  • 호수 11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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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군 물리친 돌 던지는 도구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역사 드라마 <고려거란전쟁>32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중간에 궁중 암투 장면을 무리하게 집어넣어 드라마의 격과 재미를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대제국 거란에 맞서 싸운 고려 군사들의 용맹함을 부각시키고 고려 최고의 임금이었다는 현종을 재발견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했다.

소배압이 거느린 거란군은 통주의 삼수채 전투에서 도통사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의 본진을 격파했다. 초반에는 검차(劍車)를 앞세운 고려군이 거란군의 기세를 꺾었으나 방심한 틈을 노린 거란군의 기습 공격에 강조가 사로잡히면서 무너졌다. 삼수채 전투에서 검차는 큰 활약을 했다. 그런데 검차로 거란군의 기병을 막아선 다음 물풀매, 쇠도리깨, 장창 등 다양한 무기로 혼란에 빠진 거란 병사들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풀매가 시청자들에게 낯선 용어일 거라고 판단한 제작진은 자막으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았다.

물풀매: 돌을 던질 때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평상시에 들어보지 못한 용어라 국어사전을 찾았더니 표제어에 올라 있다.

물풀매: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새를 쫓기 위하여 쓰는 물건. 가는 새끼로 국자처럼 움푹하게 망을 뜨고 두 개의 끈을 늘여서 만든다. 두 줄을 잡고 힘껏 돌리다가 한 줄을 놓으면 망 속에 있는 돌이 멀리 날아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찾아보았더니 거기서도 새를 쫓는 데 쓰는 연장이라고 했다. 여기서 물풀매와 돌팔매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궁금증을 가질 사람이 많겠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돌팔매는 오로지 팔 힘으로만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고, 물풀매는 돌을 날리는 도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새를 쫓는 용도로 사용하던 물풀매의 위력이 대단해서 전쟁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되었을 거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 풀매를 찾으면 물에 불린 쌀을 가는 데 쓰는 작은 맷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뜻을 가진 낱말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돌을 던지는 걸 뜻하는 풀매는 아예 찾을 수 없다. 하지만 1930년대까지만 해도 돌을 던지는 도구인 풀매라는 말이 종종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기록들이 있다.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에 배돌석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배돌석은 돌팔매의 명수였다. 돌주머니를 차고 다니며 위기 때마다 풀매질로 상대를 제압하곤 했다. 신문소설로 연재할 당시만 해도 분명 돌풀매풀매질이라는 말을 썼는데, 지금 시중에서 판매되는 소설책에서는 돌팔매팔매질로 표기를 바꾸었다.

풀매와 팔매는 도구를 이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분명한 의미 차이가 있다. 문제는 물풀매의 이 무엇을 뜻하느냐는 건데,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언뜻 생각하면 줄을 이용해 던지는 것이므로 줄풀매라고 했을 법하지만 그런 말은 찾을 수 없다. 풀매질을 할 때 돌을 앉히는 망을 뜻하는 그물에서 자를 따온 게 아닐까 싶긴 하다. 국어사전에 망패라는 낱말이 표제어에 있는데, ‘편싸움에서 돌팔매질을 할 때에, 돌을 싸서 던지는 가죽 제구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무릿매라는 낱말도 있는데, ‘작은 돌을 끈에 맨 후 끈의 양 끝을 잡고 휘두르다가 한쪽 끝을 놓아 돌을 멀리 던지는 팔매라는 풀이가 달려 있다. 그렇다면 물팔매의 무릿매에서 온 게 아닐까 하는 추론도 가능하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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