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나는 의무다
메세나는 의무다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5.27 00:00
  • 호수 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경진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얼마 전 모 중앙일간지 1면에 나왔던 기사가 나에게 작지만 은은한 감동을 준 일이 있었다.

어느 IT업체의 젊은 대표이사가 회사 순이익의 10%를 종자돈으로 하여 청소년문화체험을 위한 재단기금을 모으고 있다는 기사였다. “나눔과 기부의 문화를 알리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이 젊은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회식비의 일부를 기부토록 하는 아름다운 강요(?)까지 했다.

 

그런데 직원들은 이 강요를 좀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회식비뿐 아니라 즐겨 이용하는 식당까지도 포섭, 회식으로 올린 매상의 5%를 기부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작은 움직임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생소하기만 한 메세나 운동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메세나(Mesenat)는 고대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의 정치가인 마에케나스가 시인이나 예술가를 후원했던 역사에서 나온 말이다. 마에케나스(Maecenas)라는 인명에서 유래된 이 말은 본래 문화 및 예술 분야에 대한 기업의 지원을 의미했으나, 점차로 스포츠 분야 및 각종 사회단체에 대한 지원에까지 의미가 확장되어 쓰이고 있는 추세이다.

 

이토록 오래된 역사만큼 유럽에서는 기업이 문화사업이나 시민사회에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으며 미국의 경우도 1960년대 이후 록펠러에 의해 설립된 BCA(The Business Committee for the Arts)나 Arts & Business Council 같은 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도 지난 1990년 기업메세나협의회가 설립되어 탁월한 메세나 활동을 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하거나 문화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등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조직되어 120여 개의 회원사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으며 주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정보수집 및 확산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연간 수조 원대의 기부금이 쌓이는 외국에 비해 연간 1,000억 원대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기부금 규모만 봐도 한국의 메세나 운동은 아직 일천한 수준이다. 그나마 이 메세나의 수혜조차도 수도권으로 집중되어 있고 고급문화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중앙정부 주도로 구축해왔던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적 인프라의 차이가 권투로 비교하면 헤비급과 플라이급 이상으로 이미 심각하게 벌어져 있거니와 새롭게 시작하는 민간기업의 문화지원도 그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정지표를 ‘지방분권화’로 세우고 지역문화 발전 방향에 대해 아무리 토론해봤자 앞길이 잘 보일 리 없다. 암담하고 참혹한 수준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역문화를 포기하면 우리의 미래도 없으므로 어렵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지방기업도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활동에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우리라고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아리아나 윤도현 밴드의 락을 듣고싶지 않겠는가. 서울에서는 7만원, 10만원짜리 티켓을 팔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과연 몇 명이 살 수 있겠는가.

 

이게 서울과 지방의 차이다. 일반적인 경제논리로 따지면 우리 지역에서 조수미 씨나 윤도현의 목소리를 듣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방기업에서 비용을 지원하고 자치단체에서 행정적 지원을 한다면 군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보급할 수 있다. 이처럼 무엇보다도 메세나 운동이 필요한 곳은 서울이 아니라 바로 이곳, 서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