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푸스 신화’에 대한 단상(2)
‘시지푸스 신화’에 대한 단상(2)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8.13 00:00
  • 호수 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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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이 경 진
축제(canival)란 기존의 질서를 한순간 무화시키고 교란, 전복한다. 평소에는 금기시 되던 것들이 축제에서 다 허용된다. 여성이 남성으로 남성이 여성으로 분장할 수 있고 자유연애가 허용되며, 도둑질 등 범법행위가 인정된다.

일상에서 억압된 욕망을 축제라는 제의로 풀어버림으로써 궁극적으로 공동체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샤먼(shaman)’은 우리말로 하면 ‘무당’이다. 샤먼의 원형이 잘 살아있는 민족이 주로 시베리아 근처에서 사는 몽골리안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무당’과는 좀더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겠다.

샤먼은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신에겐 인간의 고통을 고하고 인간에게 신의 뜻을 전한다. 그런데 신과 인간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일치하는 건 아니다. 여기에 샤먼들의 고통이 있다. 그렇듯 신과 인간의 이해관계가 부딪칠 때, 샤먼은 어느 편에 설까.

당연히 샤먼은 인간의 편에 선다.
인간이 요구해서는 안 될 것, 즉 ‘생명’에 대한 문제를 샤먼은 목숨을 걸고 해결한다. 대신 샤먼이 그에 대한 벌을 받는다. 샤먼도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희생물’인 것이다.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는 행위가 대표적인데, 동북아시아의 소수민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이야기는 대부분 그러한 모티프로 이루어져 있다. ‘영원불사’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면서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금기’이기도 했다. ‘영원한 생명’은 신의 영역이었고 그것을 갈망하는 자는 죽게된다.

‘죽음’을 거부하는 행위란 순환적인 자연질서를 어기게 되는 것이고 그 질서가 깨지는 순간, 인간도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고대인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 속에서 죽음을 두 번이나 거부한 인간, 시지푸스를 등장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의 거부’라는, 금기된 욕망은 보통의 인간들은 가져서는 안되고, 죽음의 숙명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때론 시지푸스와 같은 ‘지혜로운 인간’은 예외가 되기도 한다. 인간도 가끔은 ‘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도 결국 하데스의 사자를 피할 수는 없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시지푸스’가 타자의 금기된 욕망을 대속하는 ‘파르마코스’이자, 그 금기된 욕망을 현실화 한 대가로서 ‘징벌’을 받게되는 ‘샤먼’임을 암시하고 있다. ‘시지푸스 신화’란 이야기 구조가 일종의 ‘축제제의’인 것이다.
인간들은, ‘시지푸스가 죽음을 거부한 것’을 통해 금기된 욕망의 표출이라는 ‘탈주’의 즐거움을 맛보고, 다시 ‘시지푸스를 죽임’으로서 기존 질서의 회복을 꾀한 것이다.

인간의 ‘지혜’의 총화인 과학기술은 끊임없이 발달했으며, 최근 보여준 생명공학의 행보는 이 과학기술의 궁극적 목표가 ‘영원불사’임을 보여준다. ‘복제양’을 탄생시키고 인간의 ‘유전정보’를 거의 밝힌 21세기의 과학기술은 조만간 인간에게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신의 영역을 정복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축복’일까, ‘저주’일까? 우리는 그것에 대한 명확한 철학적 견해를 가져야만 될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그러나 자신의 유전 정보를 ‘생식’을 통해 남긴다는 점에선 무한하다. 이것이 현재 지구 생명의 ‘질서(cosmos)’이다. 그런데 그 질서란 게 기본적으로 ‘혼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을 예로 들자.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아기를 남길 확률은 불가에서 말하는 몇 겁(겁이라는 시간 개념의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예를 들면, 에베레스트만한 철산을 부드러운 비단옷으로 부딪쳐서 닳게 하는 시간이다)의 시간에 비할 만한 확률이다. 즉 예측할 수 없는 상황, ‘혼돈’인 것이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질긴 인연’으로 만나고 사랑해서 아기를 남기고 죽어간다. ‘혼돈 속의 질서’이다.

최근 영국에서 현재의 유전공학은 그 ‘혼돈’을 단편적으로 ‘질서화’할 우려가 많고 그것이 어떤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시지푸스를 ‘결국 죽여야 했던’ 고대인의 성찰이 진정한 ‘지혜’가 아닐까.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는 혼돈(chaos)에서 나왔다. 그 혼돈을 깨는 순간, 가이아는 사라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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