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2.04 00:00
  • 호수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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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문화원 청소년백일장 산문 차하 당선작
오긍지 / 서천여자고등학교 2학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 중 겨울은 나를 참으로 따뜻하게 해준다. 추워서 온 몸에 옷을 껴입고 목도리에 장갑까지 하던 나에게 온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녹여 주시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은 바로 나의 아버지이시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신 그 분에게서 나는 따뜻한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이 약한 나에게 아버지는 보약을 지어 주시면서 나의 눈물을 쏙 빼놓는 말들만 하셨다. 혼을 내시는 말이지만 너무 아버지가 미웠고 억울하다는 생가까지 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날 보시며 “네가 건강하지 못해서 아빠가 많이 속상하시고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시기 때문일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난 지금까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만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여름날,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께서는 매우 바쁘셨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나와 내 동생들은 장화를 신고 논으로 들어갔다.

지나가시는 어른들께서는 착하다고 하시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하지만 아버지만큼은 내가 힘들다고 투덜거릴 때마다 그 일 조금 못해서 그렇게 투덜거리느냐면서 야단을 치셨다.
한나절 말없이 일을 하고 나서 아버지는 반쯤 심어 놓은 벼를 보시면서 생각에 잠기신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으시고 그냥 벼를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향해 무슨 생각을 하시냐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는 게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벼를 다 심고 보니깐 우리 논이 녹색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예쁘게 보였다. 그리고 너무 뿌듯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여름이라서 잦은 태풍들이 있는데도 우리 가족은 걱정이 하나도 되지 않는다는 얼굴들로 웃고 있었다. 다행히 서천에는 큰 피해는 없었지만 다른 곳에서 논이 물에 잠겨 강이 되어 버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여러 달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들판에는 노랗게 익은 벼들이 환하게 우리 마을을 비추는 듯하였다. 벌써 기계로 벼를 베어내어 여러 군데의 들판이 허전하였다. 우리집에서는 가을 축제라도 벌이는 냥  곡식들이 마당에 널려 있었다. 마을 이곳저곳에도 금빛으로 인해 온 마을이 금 동네가 된 기분이었다.

추수를 끝내고 들판이 비어서 쓸쓸해 보이고 외로워 보였다. 그리고 어느덧 겨울이 되어 겨울 들판은 더 추워지고 냉기만 돌뿐이었다. 그 들판을 아버지는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지의 등 뒤에서 나도 모르게 초라함을 느꼈다. 들판 때문이었을까? 무관심하게도 난 아버지의 얼굴과 손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딸로서 아버지께 못할 짓만 한 것 같아 뼈저리게 죄송스러웠다.

아버지는 들판처럼 많이 외로워 보이셨다. 머리카락 위에는 눈이라도 앉은 듯이 하얀 머리들과 조금씩 드러나는 이마, 얼굴에는 주름들, 손에는 많은 상처와 꺼칠꺼칠함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들판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변하신다. 여름에는 근심, 걱정이 많아 보이시지만 한 쪽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시다.

벼를 자식처럼 돌보시는 아버지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시기 때문일까? 추운 겨울 들판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어깨가 많이 수그러드셨다. 자식처럼 여기던 벼들을 베고 난 자리가 쓸쓸해 보이셨던 걸까?

나는 은근슬쩍 오랜만에 아버지의 팔짱을 보았다. 아버지는 약간 놀라시더니 금방 웃으셨다. 아버지의 겨울 들판은 어떠하실까? 아버지는 들판을 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아빠가 농사를 짓는 것은 가족들을 위해서란다.” 나는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때는 철부지여서 그랬던 걸까? 그리고 아버지는 들판을 보시더니 “긍지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우리 긍지가 건강하고 저 들판처럼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난 웃었지만 마음속에서 아빠의 말을 되새기게 되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창 밖 너머에 보이는 겨울 들판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온 계절의 들판은 아버지의 마음과 같다. 여름에 쓰러져 있는 벼가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가을에는 풍성한 곡식들이 있는 벌판이 아버지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유독이도 추운 겨울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난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어있는 들판은 아버지를 춥고 외롭게 만들지만 가족이 있는 아버지의 마음은 언제나 따뜻하고 진지하시기만 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초라해 보였지만 어느새 아버지의 마음이 차가운 공기를 타고 나에게 따뜻하게 전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난 아버지로 인해서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겨울 들판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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