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진정한 군자는 “말은 어눌하나 행동은 민첩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언론은 말로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고 정론으로 정의의 실천을 해야 함으로 비유하고 싶다. 또 한가지 이야기를 들고 싶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종교개혁가가 커다란 공사판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많은 인부들이 땀을 흘리며 벽돌을 나르고 있었다.
그는 가까이 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뭘 하고 있는 거요?” 그러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보면 모르쇼! 힘들게 벽돌을 나르고 있잖소!.”
그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사람은 첫 번째 사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이 사람은 손에든 벽돌을 가지런히 쌓으며 말했다. “벽돌을 쌓아 담장을 만들고 있소.”
그는 또 세 번째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세 번째 사람의 얼굴에서는 온화한 광채가 났다. 이는 손에든 벽돌을 내려놓고 땀을 훔치더니 매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게 물은 것이오? 지금 교회당을 짓고 있는 중이라오.”라고 대답했다.
또한 그렇다. 이 세 사람은 같은 일을 하고 있건만 해석하는 방법은 모두가 차이가 났다.
첫 번째 사람의 태도는 자신이 하는 일들이 삶의 고통으로만 여겼고, 두 번 째 사람의 태도는 벽돌을 쌓는 일들이 담장을 만드는 공정 중의 하나임을 아는 직무를 완수하는 직업주의 적이었지만 최고를 추구하기는 여전히 부족했다.
세 번 째 사람은 자기가 쌓는 벽돌과 흐르는 땀으로 교회당을 짓고 있는 것임을 안 것이었다.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교회당을 짓는 가치있는 일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뉴스서천 임직원들의 한 걸음 한걸음마다 흘리는 땀방울 한 방울마다 모든 일들의 밀알이 되고 그릇이 되며 우리들의 생명과 꿈과 희망과 관계 되어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주민과 사회 역시 같이할 때만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곧 진정한 사회적 정의를 이룰 수 있는 밀알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