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경 진 | ||
도정일 교수는 같은 글에서 시지푸스가 그 엄청난 형벌을 받은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하데스를 속여 죽음에서 벗어났던 죄목의 외피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의 권위’에 도전한 내용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시지푸스가 죽음과 대면하게 되는 이유는 제우스가 요정을 겁탈하는 장면을 목격(신의 영역에 대한 엿보기)하고 그 사실을 요정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는 것(폭로)이다. 엿본 것만 해도 죽음인데 그것을 폭로까지 하다니! 이로써 시지푸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진다.
그러나 시지푸스는 ‘지혜로운 인간’이다. 제우스의 머슴인 하데스가 보낸 ‘죽음의 사자’를 멋지게 속여 오히려 토옥에 가둔다. 세상은 순간 죽음이 멈춰버린 세계, 즉 인간도 신과 같은(인간과 신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유한성과 무한성이다) 불멸의 육체를 지니게 된다.
신들에겐 경천동지할 일이다. 죽음의 사자를 구출함과 동시에 하데스는 곧바로 2차 체포조를 보내 시지푸스를 지옥으로 끌고 온다. 두 번째 죽음과의 대면이지만 이때도 시지푸스는 하데스마저 속여 지상으로 ‘귀환’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잘 살다가 세 번째로 지하로 끌려간다.
아무리 꾀 많은 시지푸스지만 끝내는 신의 징벌을 피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이라는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영원히 바위를 그 유명한 ‘바위의 형벌(무의미하게 바위를 산위로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영웅’이다. 그가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을 속였다는 것, 여기서 속임이란 ‘지혜’의 다른 이름이다. 영웅의 조건은 또 하나 있다. 시지푸스가 ‘죽음’ 앞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했다는 것, 즉 ‘고난’에 맞섰다는 사실이다.
마치 오딧세우스가 자신의 부하들은 잠들게 해서(회피) 사이렌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했지만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은 채 사이렌의 유혹을 정면 돌파한 것처럼 말이다. 질 수밖에 없는, 혹은 죽을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자, 그가 시지푸스이다.
파르마코스(pharmakos)는 ‘독’이면서 ‘약’이란 뜻을 지녔으며 그리스의 축제 때 뽑힌 희생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 파르마코스는 그 공동체 사회에서 제거되야 될 대상으로서 주로 ‘근친상간’과 ‘아비살해’라는 금기를 어긴 자가 뽑힌다고 장 폴 베르낭은 말한다.
즉 그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질서를 파괴한 자를 희생제의로 제거하고 평화와 질서를 다시 찾으려고 하는 축제가 그리스의 ‘파르마코스 축제’라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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