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읍 두왕리가 고향인 신흥섭 변호사(41·서천읍 두왕리)는 요즘 오는 2월 2일 변호사사무실 개소식을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신동호·임승례 부부(서천읍 두왕리)의 4남2녀 중 막내인 그는 지난 2009년 사법고시 합격 후 지난 18일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20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뜻이 잘 맞는 연수원 동기와 군산 조촌동에 ‘신&김 법률사무소’를 열기로 한 것.
신 변호사는 요즘 서천에서 아내 김세희씨(38)와 딸로 추정되는, 아내 뱃속에서 놀고 있을 ‘헐이’(태명)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시골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가 지금 이곳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해 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과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에서 4개월간 실무실습을 한 다음부터다.
넉넉지 않았던 가정형편 때문에 막노동에 신문배달까지 해가며 죽어라 공부했던 그는 고향에 내려와 지낸 몇 달 동안 ‘내가 그동안 너무 쫓기면서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곧 태어날 제 아이는 복잡한 도시에서 쫓기듯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복잡한 세상이지만 시골에서 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고 다행히 아내의 뜻도 같았습니다”라며 단란한 가족과 함께할 고향에서의 생활에 대한 설레임을 드러냈다.
신흥섭 변호사가 법조인이 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조금 남다르다.
청소년기에 방황하며 학교에서 정학을 맞기도 하고 가출해 공장을 다니기도 했던 그가 정상궤도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스승님들처럼 지금 흔들리는 아이들에게 인생의 전환기를 안겨주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제가 가출했다가 학교로 억지로 돌아왔을 때 이명희 국어선생님께서 몇 주 동안 계속 편지를 써 주셨어요. 담임도 아닌데 진심으로 대해주신 그분, 조금만 더 참고 학교를 다녀보라고 타일러준 주위분들의 사랑과 관심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죠”라며 “저도 저처럼 꿈이 없이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조금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그 효과가 클 것 같아 법조인의 길을 택했어요”라며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길과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해 담백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예전의 생각과 앞으로의 생각이 달라질 것을 경계하듯 “변호사가 돈을 밝히지만 않으면 판사나 검사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훨씬 다양하고 많은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꿈에 그가 한발 다가설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은 누가 뭐래도 그의 아내다.
93학번으로 서울시립대에 들어갔지만 막노동까지 해가며 공부를 하기엔 너무나 힘에 부쳤고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사회로 뛰어들었지만 5년간의 직장생활 끝에 그에게 남은 것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래서 죽기를 결심하고 소주 한 병을 들고 한강을 찾았을 때 강물 위로 보이는 건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난 부모님들의 손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돌린 그를 잡아준 것이 그의 아내라고 한다. 신 변호사는 “신기하게도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33살의 저를 환영해줬어요. 아내는 결혼 후에도 계속 직장생활을 하며 제가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내조해줬죠”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그에게 힘들게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어도 예전처럼 화려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기득권자들의 틈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소리에 힘을 실은 “저한테는 다른 사람들처럼 학벌, 배경 같은 스펙은 없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저의 경험, 방황과 가난 같은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병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다시 열심히 살아갈 꿈을 돌려주고 싶어 하는 그의 순수한 마음이 변질되지 않고 지켜질 수 있도록 그의 도전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