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삼이 오이밭을 메다가<증자운과曾子耘瓜> 뿌리를 잘못 베어 죽이니<오참기근誤斬其根> 증삼 아버지가 화나서<증석노曾晢怒> 아들 증삼을 몽둥이로 두들겨 팼는데<건대장이격기배建大杖以擊其背> 아들 증삼이 기절했다. 사람들을 오래도록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증자부지이부지인구지曾子仆地而不知人久之>
며칠 뒤에 공자가 이를 듣고 분노하여<공자문지이노孔子聞之而怒> 제자들에게 말한다.<고문제자왈告門弟子曰> 증삼이 오거든<삼래參來> 글방 안으로 들이지 말라<물내勿內> 이런 소식을 들은 어린 증삼은 “나는 효를 행한 것이지 죄가 없다”라며<증삼자이위무죄曾參自以爲無罪> 공자에게 만남을 청했다.<사인청어공자使人請於孔子>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여불문호汝不聞乎> 순 임금은 아버지께서 작은 회초리를 들고 오시면 매를 맞았고<소추즉대과小棰則待過> 아버지께서 큰 몽둥이를 들고 오시면 달아나셨다는 사실을.<대장칙도주大杖則逃走> 아버지가 때린다고 해서 그걸 효라 여겨 몸이 쓰러질 때까지 피하지 않는다면<에이불피殪而不避> 만약에 네놈이 그 매에 맞아 죽었다면 너의 아버지는 자식을 때려죽인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기신사이함부어불의旣身死而陷父於不義> 그렇게 되면 그 불효가 무엇보다도 클 것이다.”<기불효숙대언其不孝孰大焉>
증삼이 이를 듣고 말한다.<증삼문지왈曾參聞之曰> “내 죄가 큽니다.<삼죄대의參罪大矣>” 마침내 공자께 자신의 잘못을 사죄했다.<수조공자이사과遂造孔子而謝過>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六本편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때가 증삼의 나이 15세 때의 일이다. 증삼은 아버지께서 일하라 하면 하루종일 일만 했다. 아버지께서 공부하라 하면 하루종일 공부만 했다. 증삼의 목표는 오로지 아버지의 말을 잘듣는 것이 그의 존재이유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의 사건이 터지고나서야 아버지께서는 자신도 너무 과했음을 알았고 자식 교육에는 스승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겪고난 뒤 아들을 자신이 스승으로 섬기고 있는 공자 문하에 정식 제자로 들어가게 한다. 증삼이 공자의 정식 제자로 집지의 예를 올린게 이 사건 있은 뒤 17세 때의 일이다.
이 때 또 다른 제자도 집지의 예를 올렸는데 증자보다 두 살 아래인 자하 복상이다. 공자께서 손수 찬하신 춘추책을 공양고 집안의 자제에게 가르쳐 훗날 춘추공양전을 있게 한 인물이다. 그렇게 공자문하에서 공부를 하게 된 증삼에게 아버지 증석은 공부하는 기본자세 세 가지를 당부한다. 그것이 논어 학이편 1-4문장에 증자의 말로 명토박아있다.
증자는 말한다.<증자왈曾子曰>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의 몸을 반성하니<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않았는가.<위인모이불충호爲人謀而不忠乎> 붕우와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지 않았는가.<여붕우교이불신호與朋友交而不信乎>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친 것은 아닌가.<전불습호傳不習乎>이다.
논어에 기록된 증삼의 첫 일성은 반성에서 시작된다. 물론 그가 죽을 때도 마지막 말은 반성이다. 그야말로 아주 훌륭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도 멍청할 때가 있었으니 논어 선진先進11-17문장이 그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증삼을 어리석다<삼야노參也魯> 근사록집해라는 책에서 대학자 정자는 이렇게 해석한다.<정자왈程子曰> 증삼은<증삼야曾參也> 천부적 자질이 매우 어리석었다.<재품심노才稟甚魯> 그런 탓에<연이然而> 증삼은 어리석어서 공부를 무식하게해서 도를 얻었다.<삼야경이노득지參也竟以魯得之> 또 말하길<우왈又曰> 증삼의 공부법은<증자지학曾子之學> 지독하게 성실하게 하는 것 뿐이다.<극성독이極誠篤已>라고 했다.
노나라 애공 16년 기원전 479년 증삼 나이 27세 때 스승 공자께서 죽자 시묘 3년상을 마치고는 30세에 이르러 무성읍 읍재가 증삼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54세 때 제나라 재상에 오른다. 노나라 도공 32년 기원전 435년 향년 71세로 졸한다. 그가 엮은 책으로는 논어가 있고 쓴 책으로는 효경. 대학. 증자십편이 전한다. 공자께서도 어리석은 자라고 인정한 그가 인류의 사표 반열에 오른 단 하나의 이유는 지독한 공부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