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그 가을을 붙들어 놓기 위하여 이미 늦은 김장 무우 씨를 갈고 있었다. 지나가던 마을 어른들께서 웃으신다. 이미 이 마을 어른들과는 24년 전부터 구면이다. 이 동네가 처가 동네이기 때문이다.
옆집 아줌니가 “허이구, 한 사장 덕에 올해는 김장 무를 걱정 않게 생겼네, 히히히.” 하시며 특유의 재밌다는 표정의 인정어린 웃음을 지으셨다.
또 산에서 지게로 장작 한 짐을 지고오던 그 아줌니의 아들이 ”머혀“ 하며 웃었다. 나하고는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아내의 동네 오빠였다.
나보다 한 두 살 위로 보이는 눈이 뀅하고 광대뼈가 나오고 깡 마른 체격으로 항상 밭으로 산으로 지게지고 부지런히 천천히 움직였다. 위암 수술을 받고 휴양차 팔순노모 곁에 와서 몇 년 동안 기적을 바라며 자연 속에 치료를 바라고 와 있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가는 길에 엄니와 못다한 서로 간에 효도를 하기 위해 와 있었을까.
지게를 짊어지고 밭으로 가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뒤 따라가는 엄니의 한 발 자욱 한 발 자욱 속에 당신의 눈물을 꾹꾹 밟으며 “내가 못된 년이여, 어쩌자고 내 새끼를 아프게 낳은기여”하시며 아들 모르게 떨어지는 눈물이 땅속으로 소리없이 스며든다.
담 너머로 보일 듯 한 큰 아들 머리를 눈물로 어루만지며 “아이구 내새끼 이 에미가 죽일 년이여, 이를 어쩐댜“
그런 엄니를 뒤로 하는 죽음을 앞 둔 아들은 “엄니, 죽기 전에 엄니하고 있고 싶어 그려유,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는 않은디 그래도 올 데라곤 엄니 곁 뿐이네유. 엄니 불효지식을 용서하세유”하며 쏟아지는 눈물을 지고 가는 지게에 한 바작 지고 산으로 간다.
결국 나온 곳으로 돌아 간 것이다. 한 생명이 움트자 한 생명은 온 곳으로 돌아 간 것이다.
처자식을 떠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나를 낳아준 엄니를 무슨 죄가 있어 찾아 왔을까. 죽음을 앞둔 아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노모를 찾아 온 그 심정은 오죽했을까. 엄니보다 먼저 가게 될 아들 마음은..그럼에도 엄니 곁으로 왔다.
서로는 결말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저 사는 날까지 서로 기대고 엄마한테 기대고 살아 보리라
어차피 모든 인생은 이렇게 준비하는 것인데 아들이 엄니보다 조금 먼저 가는 것이 어찌 죄란 말인가.
“잘 살으라 내 보내 줬건만, 아들아 이렇게 에미 곁으로 돌아오면 어쩌란 말이여, 이 에미의 한은 어쩌란 말이여”
그래도 엄니의 품이 편했으리라.
그렇게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솟아 난 새싹이 움트는가 하더니만 또 한 생명은 엄니의 품으로 다시 돌아갔다.
울지도 못하고 끅끅대며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아들만 부르며 눈알만 충혈되어갔다.
동네 노인들의 위로를 받으며 함께 울어본다. 아들의 절규를 가슴에 묻으며 산 허리로 휘감아지는 노을 속에 무엇인가 꾸울꺽 엄니는 삼켜 보신다.
나는 식사를 챙겨 내 손으로 가져다 드려본다.
가슴 속에 묻어 둔 아들을 꺼내 울까봐 나는 한 동안 내 모습을 감췄다.
며칠 후 “이 사람아 자네마저 안 보여주면 나는 어찌하나. 자네 기척이라도 느끼며 살게 해 줘. 그렇다고 먼저 간 아들 뒤 따라간다고 뭐가 해결되는 거 없자녀”
“나를 바라보는 새끼가 또 있자녀......,”
그렇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고 또 다른 새끼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꺼내본다. 또 다른 희망을 품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