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에서 노점상으로 …
농부에서 노점상으로 …
  • 공금란
  • 승인 2004.04.16 00:00
  • 호수 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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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옥엽 키운
배추 헐값 용납 못해,
8년째 시장사람들과
한솥밥 짓기 시작

4월 12일, 2·7장인 서천 5일장이 열린 날이다.
입추여지 없이 장터가 붐 빈다. 며칠 전 말을 터놓은 구만선(51) 씨의 채소 전을 찾아 나섰다. 붐비는 장터 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ㅎ마트에서 활어 노점으로 통하는 길목 가방, 액세서리, 옷 노점들이 즐비한 틈에 어울리지 않는 채소노점상이 있다. 구만선 씨와 그의 부인 이덕순(48) 씨가 벌여 논 채소 전, 웬일인지 오늘은 그의 아내 이덕순 씨 혼자다.
방문객이 의아해 하는 표정을 먼저 읽어버리고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니 남편은 틈틈이 농사일을 해야죠” 묻지 않아도 시원시원하게 궁금증을 풀어준다.
만선 씨는 부지런한 농부이며 혼자 잘살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 때는 문산면 농민회 총무 일을 맡아보면서 농민들을 위해 나름대로 일하던 경력이 있다.
시골마을 교회에서 반주를 한다는 그의 아내 덕순 씨는 보기에도 후덕해, 오는 손님 절대 안 놓치고 단골로 만들어 버린다.
삶아서 나물무침 하기 꼭 좋은 미나리 한 뭇에 천 원, 양파, 매운 고추, 안 매운 고추, 오이 한 뭇에 무조건 2천 원이라고 흥정하고는 덤으로 한줌씩 퍼주니 비록 채소와 동떨어진 물건들을 파는 노점들 틈에 끼어 있어도 한번 그녀의 후한 손맛을 본 이들은 단골이 안 되고는 못 베길 터.
남편도 장사 잘하는데 부인은 더 잘한다는 말에 “말도 마요, 내가 우리남편 얼마나 교육시킨 줄 아세요?” 장터에 나와 수줍어하고 창피하다며 고개만 푹 수그리고 말을 못하던 남편에게 “지금은 체면 차릴 때가 아니라 죽기살기로 일해야할 때다”고 경을 읽었다는 덕순 씨. 지금은 술 한잔하면 자기를 가르치려 든다며 웃는 덕순 씨의 모습이 활짝 핀 목련처럼 화사하기만 하다.
한 때 그들은 600여 평의 비닐하우스에 알뜰살뜰 농사하던 농부였다. 그러다 8년 전, 애써 키운 배추를 싣고 공판장에 갔는데 그야말로 헐값이라 너무 억울해서 직접 소매에 나섰더니 제법 돈이 되더란다.
그것이 계기가 돼서 남편은 농사를 짓고 자신은 그 것들을 내다 팔기 시작했고 차츰 농사짓는 것이 타산에 맞지 않자 지금은 노점상에 부부가 더욱 매달리게 됐다고 한다.
“처음엔 나도 창피해서 서천장에는 차마 못나오고 안면이 없는 부여 홍산장을 이용했지요”라 말하는 덕순 씨, 며칠 전에 만난 남편 만선 씨도 이 길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든다했었다.
“남편은 번듯한 가게를 마련하고 싶어하지만 나는 달라요, 일단 자본 안들이고 알차게 벌고 싶거든요”역시 두 자녀를 둔 어머니요, 아내인 살림꾼다운 말이다.
11시 30분, 아직 점심 먹기는 이른 시간. 근처에 식당이라곤 없는데 어디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진동해 근원을 찾았다.
뒤에 세워 놓은 덕순 씨네 화물차 짐칸에서 된장찌개는 물론 아구탕에다 한 솥 가득 밥이 지어지고 있었다.
장날마다 근처에서 노점 하는 이들이 함께 점심을 지어먹고 있단다. 그들의 자타공인 주방장은 가방 노점을 하며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모모 여사로 이곳 저곳 다니며 내 물건처럼 재료들을 가져다 점심을 마련한다.
밥에 뜸이 들어가고 그 구수한 냄새가 장안을 진동할 즘, 주방장 모모여사는 오이상자 몇 개를 고이고 그 위에 널빤지를 덮어 여남은 둘러앉을 밥상을 꾸며 놓는다. 이렇게 식사준비가 완료되면 덕순 씨는 옆에서 오만가지 머리핀을 팔고 있는 총각 최모 씨, 신발 파는 아저씨, 뻥튀기 아줌마 등을 불러모으며 싱싱한 오이며 풋고추를 푸짐하게 상위에 올리고 주방장 모모여사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하얀 쌀밥을 그득그득 퍼놓기 시작한다.
그러면 속속 자신들이 준비한 밑반찬 한가지씩을 들고 모여들어 금새 된장찌개 국물이 푹푹 줄어든다. 여럿이 일하고 밥도 여럿이 먹으란 말이 있던가? 이게 바로 세상사는 맛이 아니런가.
기자에게 숟가락을 내밀며 함께 먹기를 권한다. 혹 갑작스런 식객이 껴서 들의 밥사발을 축내 부족하지나 않을까 싶어 넘어오는 침을 꼴깍 삼키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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