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무너지는 ‘백년지계’ 어찌할 것인가
■ 모시장터 / 무너지는 ‘백년지계’ 어찌할 것인가
  • 뉴스서천
  • 승인 2023.07.27 07:57
  • 호수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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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용 칼럼위원
정해용 칼럼위원

흔히들 교육제도를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라 한다. 국가로 보아서는 향후 1백년을 좌우할 중대사지만, 한 개인에게로 말하자면 종신지계(終身之計)’이다. 개인의 삶은 백년을 전후로 마무리 되니까 말이다. 교육이 종신지계라는 말은 고대의 경전에도 나오는 말이니, 인류는 일찍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공교육의 붕괴현상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반복되어 왔다. 교육의 중요성을 몰라서 방치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말이 된다.

작금에 공교육의 위기는 또다시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아이들은 교사를 가장 흔한 직업 중 하나를 가진 직업인으로 보고,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교사에게 욕설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며, 그런 아이들의 문제를 학부모들에게 통보했을 때 오히려 자기 자식을 두둔하여 교사를 조롱하거나 심지어 협박하는 일이 또한 흔할 정도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급기야 수치심과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현직 교사가 스스로 교실 안에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벌어지자 사회는 비로소 잠시나마 눈길을 돌린다. 오죽하면 교실 안에서 자진한 것은 사회를 향하여 제발 학교 교실에 눈을 돌려달라는 호소의 의미일 것이라고들 해석한다.

옛 속담에 겉옷을 주면 속옷까지 달라고 한다는 말이 있거니와, ‘오냐오냐 하니 끝 간 줄을 모르는시속(時俗)의 무례함을 어찌해야 할까. 돈이나 주먹의 무서움은 알고 예의와 염치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 천박한 세태가 낳는 지극히 자연스런 귀결이다. 27백 년 전 관자는 국가에 ///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힌다고 경고했고, 그로부터 4백여 년 뒤에 윤리도덕을 설파한 맹자는 ///(4)’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인의예지가 다 무너져 내리는 지금 우리는 무엇부터 손을 대고 무엇부터 바로잡을 것인가.

그 해답이 멀리 있지 않다고 본다. 2023년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비판에 핏대를 세울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심판하고 처벌하는 데서 답을 구할 게 아니라, 인의예지를 다 잊어버린 우리 자신들에 대하여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괴하여 울고, 절실하게 뉘우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지 않고서야 탐욕에 찌들고 원한 가득한 이 세태가 바뀔 수 있겠는가. 기실 정치가 비뚤어지고 인심이 메마르고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진 이 현상의 뿌리가 무엇인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지능이라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답을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탐욕을 따르고 향락을 추구하고 부정부패에 눈을 감고 그들을 부러워하며 심지어 추종하고 있다.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인간 스스로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양심적이고 화목한 곳으로 가꿀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하늘이 무심하단 소리만 한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인간들을 하늘이며 신()인들 무슨 수로 돕는단 말인가.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공교육의 난맥을 풀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교사들에 의한 학생 인권의 침해를 바로잡으려니 교사들의 권리가 유린되고, 학생 학부모에 의한 교사들의 권리를 침해를 바로잡으려니 학생 인권의 침해가 우려된다는 제법 그럴싸한 합리적(?) 문제를 앞세운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

그렇다. 지금 학교의 문제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문제다. 인간이 바르면 법과 제도는 저절로 그에 맞게 바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법()이 아니라 개개인들과 나아가 이 사회의 윤리적 각성이, 공교육 현장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한층 급한 과제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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