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서천서당 훈장
  • 승인 2024.09.12 10:09
  • 호수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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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면 다음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우농 송우영
우농 송우영

논어 자로편 11-9문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공자님께서 위나라에 가실 적에 제자 염유가 수레를 몰았는데 공자님께서 위나라 백성이 많음을 보시고 위나라는 백성들이 많구나.<서의재庶矣哉>” 라고 말씀하시니 염유는 이렇게 여쭈었다.<염유왈冉有曰>

이미 백성들이 많아졌으면<기서의既庶矣>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우하가언又何加焉>”

이에 공자님은 부자가 되게 해주어야 한다.<부지富之>”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염유가 또 여쭙기를 이미 부자가 됐으면<기부의既富矣>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우하가언又何加焉>” 그러자 공자님께서 말씀하신다. “가르쳐야한다.<교지教之>”

본래 공자님의 마차를 몰았던 이는 번지이나 이날에는 번지가 마차를 몰지 않고 염유가 몰았다. 염유의 이름은 염구로 공자님과의 나이 차는 대략 29세 가량이며 논어에 16회 언급된다.

염구는 똑똑하고 재주가 있는데다가 부드럽고 온화하며 돌다리고 두둘겨보고 건너는 소심한 성품으로 정치적 감각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처음에 공자님 문하에서 공부할 때는 무척이나 겸손했다. 그 겸손함의 정도가 지나쳐 스승인 공자님도 염려할 지경이었다. 옹야 6-10문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염구는 말한다.<염구왈冉求曰>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비불열자지도非不說子之道> 힘이 부족할 따름입니다.<역부족야力不足也>”

공자님 밀씀에<자왈子曰> “힘이 부족한 자는<역부족자力不足者> 중도에서 그만두지만<중도이폐中道而廢> 너는 미리 너의 한계를 긋는구나.<금여획今女畫>” 또 대대례기 위장군문자편에서 염구를 이렇게 평한다. “노인을 공경하고 고아와 불우한 사람들을 구휼하며 길가는 나그네라고 맞이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예로서 대하며 공부하기를 좋아하며 사물을 깊이 관찰하여 이를 고생이라 여기지 않나니 이것이 염구의 모습이다.”

이렇게 훌륭한 염구였거늘 그가 언제부턴가 권력의 맛을 보더니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논어 선진편 11-17문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한데도<계씨부어주공季氏富於周公> 염구가<이구야而求也> 그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 재산을 더 늘려주니,<위지취렴이부익지爲之聚斂而附益之>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염구는 이제 우리의 무리가 아니니<비오도야非吾徒也> 제자들아<소자小子> 북을 울려 성토함이<명고이공지鳴鼓而攻> 옳다.<가야可也>”

계씨는 노나라의 대부로 당시 실세였다. 주공은 노나라 초대 군주로 공자님께서 가장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분으로 꿈속에서조차도 늘 뵙던 분이다. 쉽게 말해서 신하인 대부가 군주보다 재물이 더 많다는 말이다. 이는 염유가 온갖 명목을 붙여 자신의 상관인 대부 계씨를 위해 백성들에게 부당한 세금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자를 일러 논어 선진편은 염구는<구야求也> 숫자만 채우는 신하<가신의可謂具臣矣>”라 혹평한 바 있다.

사실 어찌보면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권력이나 재물 앞에서는 내려놓기가 어려운가보다.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무릇 호적에 있는 백성으로<범편호지민凡編戶之民> 부를 서로 비교하여 나보다 열 배가 많으면 나를 낮추며<부상십즉비하지富相什則卑下之> 부하기가 나보다 백배가 많으면 그를 두려워 꺼리며<백즉외탄지百則畏憚之> 부하기가 나보다 천 배가 많으면 그의 일을 해주며<천즉역千則役> 부하기가 나보다 만 배가 많으면 그의 노예가 되나니<만즉복萬則僕> 이것이 사물의 이치다<물지리야物之理也>”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그렇다. 부는<부자富者> 사람의 성정으로<인지정성人之情性> 배우지 않아도<소불학所不學> 모두 바라는 것이다.<이구욕자야而俱欲者也> 부를 쌓는 데 어찌 정해진 직업이 있겠으며<부무경업富無經業> 재물에 정해진 주인이 따로 있겠는가<화무상주貨無常主> 그래서 공자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미리 아신 바 되어 부자가 된 다음에는 그 부작용을 근심하시어 가르치라 했던 것이다. 가르침의 으뜸으로는 덕을 꼽는데 덕자인소귀야德者人所歸也라 했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여든다는 말이다.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 했다. 이 있으면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이다. 덕자여德者與라 했다. 덕은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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