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안 ‘국민의힘’ 불참…14일 2차 탄핵안 표결
지난 3일 한밤중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온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헌법 77조에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 필요에 의하거나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이번 계엄 선포는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상태가 아니어서 위헌이다. 계엄 선포 이후 속속 드러난 사실들을 언론과 소셜네트워크 등의 보도를 토대로 종합해 정리했다.<편집자>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23분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 선포 한 시간 만에 계엄사령부가 설치되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밤 11시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치 활동 및 집회를 금지하는 포고령이 발표됐다.
방송을 들은 시민들이 국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계엄군이 국회에 도착하기 전에 정문을 막고 계엄군의 진입을 저지했으며 본청 입구를 막아 계엄군의 의사당 진입을 저지했다. 이에 계엄군 50여명은 유리창을 깨고 본청에 진입했다.
자정 무렵 본회의장에 190명의 의원이 집결하며 의결 요건을 충족시키고 계엄군이 본청으로 진입하려는 상황에서도 표결이 진행되었으며 재석 의원 190명 전원이 계엄 해제에 찬성하며 0시 48분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직후, 계엄군은 국회에서 철수했다. 4일 새벽 4시 30분경 윤대통령은 “국회의 요구가 있어 계엄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두 차례에 걸쳐 국회에 투입한 병력은 280여명이며 중앙선관위에 투입한 병역은 297명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 투입 병력이 더 많은 이유는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두 곳에 투입한 부대는 특수전사령부와 국군방첩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그리고 서울경찰청 소속의 경찰이다. 이 가운데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경찰청의 상급 부서인 행정안전부의 이상민 장관, 그리고 김용현 국방부장관은 대통령과 함께 서울 충암고등학교 동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작전을 지휘한 내용들이 속속 밝혀졌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6일 오후 홍장원 안기부 1차장을 불러 면담을 했다. 이 때 참석한 정보위 간사 더불어민주당의 김병기 의원은 기자들에게 면담 내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3일 22시 53분 대통령이 1차장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은 대화 내용이다.
- 윤 대통령:봤지?
= 홍 1차장:비상계엄 발표하는 거 봤습니다.
- 윤: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수사권 줄테니 우선 방첩사를 도와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와.
= 홍: 알겠습니다.
이후 홍 1차장은 육사 후배인 방첩사령관에게 전화해 뭘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일단 국회는 경찰을 통해 봉쇄하고 있다. 체포조가 나가 있는데 소재파악이 안된다.”며 체포대상자 명단을 불러주고 위치추적 해달라며 검거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또한 곽종근 특수전사령관도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면담에서 대통령에게서 부대 이동 상황을 묻는 전화가 왔었다고 증언했다.
지난 7일 오후 5시 국회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이 있는 날이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인파로 국회 앞은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국민의힘 당사를 에워싸고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부산, 대구 등 지방의 대도시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서천의 서천군농민회 등 시민단체연대는 군산의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어울 여의도광장 집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이 출석을 거부해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다. 이번 주 14일 국회에서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을 예정이다.
한편 법무부는 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출국금지조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