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라는 것은 평생공부이지만 그 출발은 어려서의 공부에 있는 거다. 공자님께서는 자신의 공부 시작을 일러 논어 위정편 2-4문장에서 이렇게 밝히신 바 있으시다.
“나는 15세에 이르러 공부에 뜻을 두었다.<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그리고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에 대해 섭공의 물음에 대한 자로부대(子路不對)를 통해서 밝히신 바 있으시다. 논어 술이편 7-18문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섭땅의 군주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님은 어떠한 분이시냐며 물으니<섭공문공자어자로葉公問孔子於子路>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자로부대子路不對>”
다음날 공자님께서 이런 사실을 아시고는 자로에게 야단치듯 말한다. “너는 어찌 말하지 않았느냐.<여해불왈女奚不曰> 그 사람됨이<기위인야其爲人也> 공부를 했다 하면 열심히 공부하느라 밥 먹는 것도 잊으며<발분망식發憤忘食>, 공부가 즐거워 근심조차도 잊으며<락이불우樂以忘憂>, 공부하는 기쁨에 장차 늙음이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했노라고.<부지노지장지운이不知老之將至云爾>”
공자님께서 사시던 시대는 누가 공부하라고 등 떠미는 사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찾아와 공부를 권하는 세상은 더욱 아니다. 스스로가 필요에 의해서 공부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이야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선행학습’이라며 공부를 달고 산다지만 그 시대에는 그렇지 아니했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가 먼저 공부를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모범을 보여준 사례가 없어서 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자님은 그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공부법을 몸으로 실천하여 세상에 알려주신 분이다. 그래서 공부는 누구를 무론하고 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그공부를 통해서 내 삶이 충분히 바뀌는 것이다.
물론 혹자들은 공부와 현실 생활 사이는 그 멀기가 엽기적이라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를 논어 위정편 2-15문장을 통해 이렇게 조심하라고 한다.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헛수고이며<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옛사람에게 있어서 공부라는 것은 계산 이전에 사유를 우선으로 한다. 논어가 있고 맹자가 있다. 이러한 책들에는 수 천 년이 지나는 동안 인구에 회자되어 오면서 검증에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책이라는 점에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책을 읽고 쓰고 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논어든 맹자든 이러한 경전을 공부한다 라는 것에는 세 가지의 층위를 갖는다. 누구누구는 논어 맹자를 공부한다더라 라는 소문을 듣는 일이고, 또 누구는 논어든 맹자든 공부하는 자리에 한두 번 참석해서 확인을 해보는 일이고, 또 다른 혹자는 직접 논어책이나 맹자 책을 들고 와 모르는 글자는 옥편을 찾아가면서 일일이 읽고 쓰고 외워 그것을 내 지식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공부에는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논어든 맹자든 경전의 공부를 만나는 단계이다. 이러한 공부는 내가 덤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논어 공부가 나를 찾아오든가 아니면 맹자 공부가 나를 찾아오든가 와야 가능하다. 둘째는 여기에는 긴 수고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인내를 요구한다. 공부는 특히 옛글 공부는 결과를 쉽게 드러내 주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누적된 층이 생겨야만이 비로소 홀로 설 수 있고 그 깊이가 웅숭해 지는 것이다. 셋째로 논어 공부든 맹자 공부든 즉 경전공부라는 것은 눈에 밟히고 귀에 딱지가 돋도록 반복에 반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는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논어 자한편 9-21문장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싹은 트였으나 꽃까지는 피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묘이불수자유의부苗而不秀者有矣夫> 꽃은 피웠으나 열매까지는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수이불실자유의부秀而不實者有矣夫>” 인간의 본성 회복은 공부에 있다는 말이다.<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일찍이 중용은 이렇게 기록으로 밝히신 바 있다. 희미한 것만큼 뚜렷한 것은 없다.<막현호미莫顯乎微> 곧 공부하면 모든 게 환히 드러난다는 말이다. 퇴계 이황 선생님은 말한다. “성현불아기야聖賢不我欺也,” 성현의 공부는 나를 속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