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규(梁星珪) | ||
우리고장 알고 보면 아주 멋진 곳입니다.
비단결 같이 서해로 흐르는 물줄기가 치마폭처럼 가장 넓게 퍼진 데라서 서천(舒川)이지요. 그 옛날 백제부흥운동의 옹찬 애국투지가 건재하고, 목은 이색·사육신 이개의 곧은 기상과 월남 이상재의 굳은 기백이 지금껏 살아 숨쉽니다.
또 이 겨레 역사의 새로운 지평, 기독신앙의 성서가 맨 처음으로 이 땅에 들어온 기적이 바로 여기서 일어났으니, 이다지도 기막히게 어여쁜 이름에다 씩씩한 역사, 훌륭한 인물과 경건한 의미, 이 모두를 한꺼번에 지닌 고을이 과연 대한민국 천지에 또 있으랴.
아, 헌데 글쎄 국가지도자들의 얄팍한 속임수 내지 멍청한 우유부단함으로 장항산업단지조감도만 물위에 둥둥 17년을 떠다니고, 그새 우리네 고통이 둑에 갇혀 강물처럼 퉁퉁 불어 차오르는 동안 시골살림은 하구언 강바닥마냥 바싹 말라갑니다.
자칫하면 영락없는 금강 오리 알 신세를 면키 어렵게 생겼습니다. 정부통계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구와 사업체수, 경제인구와 군 재정자립도)은 온통 반 토막이요, 걱정거리(노인인구, 의료비, 국민연금지급액)는 전부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지난 여름 일·이십년 새 우리서천이 전국에서 최고로 가난하고 늙은 동네가 되었다는 특집기사가 실렸기에 찬찬히 신문을 살펴보니, 아기울음 18년 만에 드디어 터졌노라고 석동사람 한데 모여 박수치는데 유독 은총이네 부모 말고는 죄다 쪼글쪼글 합디다. 게다가 환자복장 늙은이 몇이서 텃밭일구는 뒤편에 잔뜩 녹슨 철봉과 미끄럼틀만 처량하던 길산 노인병원 앞마당, 거기가 왕년에 초등학교 운동장이었으니…….
작년 어느 일간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우리 함께 음미해보고 또 얘기합시다.
“독수리의 결정(決定)”
독수리는 가장 오래 사는 새로 70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70년을 살기 위해서는 40살 정도 이르렀을 때 신중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한다. 40세 정도가 되면 발톱이 안으로 굽어진 채로 굳어져서 먹이를 잡기조차 어려워지며 길고 휘어진 부리는 독수리의 가슴 쪽으로 구부러진다.
날개는 약해지고 무거워지며 깃털들은 두꺼워져 날아다니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운 짐이 된다. 독수리에게는 이제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굶어 죽든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도약의 과정을 선택하든지.
새로운 도약의 과정을 선택할 경우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절벽 끝에 둥지를 틀고 전혀 날지 않고 머문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리가 없어질 때까지 바위에 대고 친다. 부리가 없어진 후에는 새로운 부리가 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새로 난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내는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새로운 발톱이 다 자라나면 이제는 낡은 깃털을 뽑아낸다.
이렇게 5개월이 지나면 독수리의 새로운 비행이 시작되며 그 생명을 30년 연장 할 수 있게 된다. 발톱이 무뎌지고 부리가 안으로 굽어지고 날개가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세월만 탓할 순 없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변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동안 익숙해 있던 낡은 습관과 사고, 전통을 버리고 삶에서 벗어나 얼마동안 혁신의 과정을 밟아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 그것은 정지된 상태로 단순히 시간의 기다림이 아니라 바위 위에 앉아 부리를 깨고 발톱과 깃털을 뽑는 고통스런 변신을 꾀하며 적극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기다림이어야 한다.
유방이 촉에서 병사를 양성하듯이.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준비가 되었을 때야 마침내 독수리와 같이 날개를 펴고 날 수 있다.
혹, 지금 이순간 자신의 발톱은 휘어 무뎌지고 부리는 안으로 굽어지고 날개는 너무 무거워져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듣자하니 저 너머 호남 어딘가에 장성이란 산촌이 있는데 거기가 요새 예사롭지 않다합디다. 대강 십년전만해도 그 처지가 요즘 우리나 매한가지였던 모양인데 글쎄 민선군수 한양반이 제대로 들어서서 마을을 그새 몰라보게 바꿔 놨다지 뭡니까.
하여 유별나게 근심 많은 서천노인 따로 모여 삼삼오오 가봤더니 진짜 우리하곤 사뭇 다릅디다.
<계속>
저작권자 © 뉴스서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