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규 | ||
동네 분위기가 어찌 이리도 좋은가 해서 물어보니, 군수양반 부임 일성으로 ‘법규·예산·선례미비를 이유로 주민·사업체의 민원을 방치마라’하고 말 안 듣는 공무원들부터 그저 싸 뜯어고쳐 놓았답디다. 또 본받을 만한 인사들을 모셔다가 꾸준히 아카데미를 연다는데, 실제로 꽉꽉 들어찬 강당에서 열심히 강의 듣는 주민들 자세가 얼마나 진지한지 모르겠습디다.
안내를 쫓아다니며 여기저기 다니는 동안 자기네 했다는 일 솔솔 들어보니 정말 대단합디다. 까짓 산업단지고 물류본부고 간에 그런 것 들어선 게 대수가 아니라 그야말로 방방곡곡 의욕은 불길이요 활기는 발랄입디다 그려. 어쨌든 소문이나 책으로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사정이 좋아 보이고, 내심 이 동네가 장차 무슨 또 큰일을 저지를까 하고 자못 궁금해지더이다.
동네 형편 풀려가는 게 묘한 것이, 군(郡)이 원체 잘해서 그런지, 도(道)가 팔을 걷어붙이는가 싶더니만 급기야 정부까지 마구 발 벗고 나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차피 기왕지사 전국대표 시범마을로 장성이 뽑힌 바에 최고로 본때 있게 한번 만들어줄 테니까 아무소리 말라며 이래저래 고쳐주고 이것저것 세워주고 사통팔달 큰길까지 시원시원하게 막 닦아줍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예 이웃마을까지 몽땅 싸잡아서 15년간 23조원으로 왕창 개발한답디다. 불길에 기름 붓듯 이렇게도 밀어대니 동네사람 얼씨구나 신명나서 더 애쓰고, 군수양반 홍길동마냥 번쩍하고 한양에 올라가서 투자설명 하러왔소 했더니만 한다하는 기업체들이 구름처럼 모이더랍디다.
눈치가 비호같은 회사사장들 뒤질세라 늦을세라 돈 보따리 싸들고 부리나케 장성으로 몰려들어 군청 문을 그저 사정없이 두들겨대는데, 설마하니 만리장성 후려치던 흉노 떼가 그만이나 악착같을까, 하여튼 야단법석 그야말로 가관입디다 그려.
과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이게 산간오지를 호남의 중심으로 감쪽같이 탈바꿈시킨 장성에서 요새 벌어지는 사단이외다. 돌아오는 길에 얼핏 올려다보니 독수리 한 마리 어디서 올랐는지 훨훨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더이다. 어찌나 그럴싸하던지…….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이랬으면 오죽 좋으랴, 충청에서 서천이 이랬으면 또 얼마나 기쁘랴. 까짓 강남이사 새끼손톱만큼도 부럽지 않더니만 전남 장성은 늙은이 마음속에서 왜 그다지도 탐이 나던지……, 그저 통째로 들어다가 모조리 이쪽으로 옮겨올 수만 있다면 여간 좋지 않으련만, 그 동네 축령산 하찮은 돌멩이마저도 이 고을 천방산 옥돌을 갈라 치며 숫돌로 쓰기에 족해 보입디다. 당장 올해부터는 우리도 심기일전 일치단결 장성마냥 뭔가를 한번 이룩해 봅시다. 새해에는 모두가 일취월장해서 우리고을이 새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우리가 무심코 잠을 자고 있어도 자연히 계절은 바뀝니다. 암만 밀어내도 속절없이 봄은 다시 다가오고, 마량리 바닷가 아름다운 동산에는 불꽃보다 더 붉은 동백꽃이 피겠지요. 우리 고을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 올 터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십시다. 나가서 밭을 일굽시다. 그리고 씨앗을 심읍시다. 제발 뿌리지 말고 정성스레 묻읍시다. 거기서 우리의 희망도 한 톨 한 톨 함께 심읍시다.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알아맞힐 순 없지만 누구라도 훗날의 모습을 그릴 수는 있으니 그것이 바로 희망이외다. 알토란 같은 희망의 씨앗을 우리 마음 밭에 꼭꼭 심어 두었으니 부디 힘을 내십시다. 어려워도 주저앉지 말고 괴로워도 낙망하진 맙시다.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절대 체념일랑은 하지 말고 괴로워도 낙망하진 마십시다. 용기로 두려움을 몰아내어 자신감으로 무기력을 털어내고 긍정의 힘으로 불가능을 이겨냅시다. 흐르는 땀을 모아 물 뿌려주고, 우리 삶의 알맹이만 골라서 거름으로 듬뿍 줍시다. 그렇게 서천의 봄을 함께 열어 가십시다. 그러다보면 하늘도 그리 무심치는 않으실 겝니다. 우리 가슴 속에 희망이 살아있는 한, 그 희망이 움터 자라 마침내 우리의 꿈이 값진 열매 맺을 때까지…….
여러분의 건강, 가정의 평안, 그리고 서천의 도약을 마음깊이 소망합니다. 근하신년(謹賀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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