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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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서천
  • 승인 2002.07.04 00:00
  • 호수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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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축제’는 끝나고
“태초에 신화가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페터 카멘친트 편)에 나오는 말이다. 16강이란 위업을 이룬 것만도 대견한데 8강, 4강으로 이어지는 태극 전사의 맹활약에 우리 스스로도 놀라고 세계도 놀라는 신화를 이룬 것이다.
온 국민은 흥분했고 한반도는 들끓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너도나도 붉은 셔츠를 입고 광화문, 서울 시청 앞, 한강 둔치, 대학로, 코엑스 앞 광장, 야구장으로 몰려들었고 각 지방도 공간마다 만원을 이루어 연인원 1천4백여 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지만 안방, 식당, 커피 숍, 호프집 등을 합치면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온통 붉은 물결을 이루었다. 그야말로 코리아는 함성이 있었다. 세계는 경악했다. 확실히 새로운 신화였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양대 사학을 중심으로 한 뿌리깊은 파벌로 조타수 없이 흔들렸고 대표선수 선발마저 비정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축구선수들의 기량이 크게 부족하여 유럽선수들이게 밀렸던 것이 결코 아니다. 나름대로 정신력과 투혼을 갖춘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의 사나이들이었다. 한마디로 고삐 풀린 야생마,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히딩크라는 걸출한 조타수를 만나면서부터 이들은 재무장, 월드컵 16강이라는 깃발을 올리고 각자의 포지션을 정하여 전혀 새로운 시스템으로 조련, 항해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불과 500여일 만에 수비에서는 4~5명이 벌떼처럼 상대선수를 에워싸 꼼짝 못하도록 만들었고 공격에서는 전광석화처럼 상대골문을 두들겨 마침내는 북구를 가로지르고 태평양을 넘어 지중해까지 돌진, 찢기고 할퀴면서도 끈질기게 오대양을 누빌 기세였지만 ‘4강 신화’에서 닻을 내렸다.
관객은 예의를 갖춰야할 장소이거나 근무시간을 막론하고 붉은 평상복을 입고 힘들고 거친 항해가 이어질 때마다 열광하고 환호하였다. 삼칠박자면 어떻고 엇박자면 어떠랴.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날 “우리편 이겨라”하고 힘껏 손뼉을 쳐본 이래 이토록 손바닥이 얼얼하고 목이 쉬도록 외쳐본 일이 있었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삼삼오오 모여든 붉은 행렬. 목이 메도록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댄 인파. 아쉬움과 기쁨이 넘쳐 내뿜는 한숨, 눈물. 곡예사가 장막을 거두면 다음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장비를 다시 수습하듯 쓰레기를 줍는 정신. 지구촌은 “위대한 신화”라고 환호하고 찬사를 보냈다.
혹자는 서구 개인주의 정신에 물들은 젊은이들에게 농경사회의 유대의식이 되살아난 결과라느니, 97년 외환위기 이후 움츠려든 기성 세대의 응어리가 한순간에 분출된 이유였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진단을 내놓건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나’라는 의식을 ‘우리’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 더 높이 사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2002년 6월의 축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상황에서 일상에 어떻게 대처시켜야 하는 것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른바 ‘월드컵 증후군’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중력을 잃고 허탈감을 느껴 몸살을 앓거나 우울증 내지 상실감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긴장감과 흥분상태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수단으로 자극적인 소재를 갈구하다보면 지나친 음주나 마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월드컵 열광이 국운으로 이어질 수 잇도록 프로그램을 개발, ‘상승의 코리아’로 전환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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