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무사히 마치고 이 글을 받을 즈음이면 아마도 신혼생활에 정신없겠지.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줘야 했는데, 미안하구나.
중학교 다른 친구들도 많이 오고 무사히 잘 치렀겠지? 혜선이야 빈틈없이 야무지니까. 아주 잘 해냈으리라 믿는다. 신랑 ‘동훈’이 역시 샘 맘에 드는 멋진 사람이니 잘 택했고.
결혼해보니까 그렇더구나. 가치관도 다르고 성격, 취미도 다르며 자라온 환경도 다르다보니,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살면서 나타나는 거야. 특히 시댁문제는 더 그렇고.
그때마다 누가 소개를 시켜주었건, 내가 택한 배우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모든 일들은 자신이 책임지고 원만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늘 잊지 않았단다. 몸소 배우자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배우자 역시 나를 믿고 존중할 것이 아닌가라고.
안식구가 밖에 나가 늦을 때, 청소며, 설거지는 다 해놓은 건지 등을 늘 점검했단다. 나도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왔을 때 저분하면 짜증나듯이, 배우자도 마찬가지겠지 하고,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단다. 하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변함없는 것 같더구나.
암튼 제자인 신랑신부, 둘 사이의 만남이 결혼했으니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 감싸주고 배려해주고, 믿어준다면 큰 트러블 없이 행복한 가정 만들어 가리라 믿는단다.
자식도 마찬가지더구나. 초·중·고 때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부모가 독서하고 다정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도 따라서 공부하는 것이지…. 우리도 느꼈겠지만 공부하란 잔소리. 또 듣기 좋은 소리라도 두세 번 더하면 잔소리가 되는 것이지. 어른들이 먼저 독서하는 분위기만 살리면 아이들은 그냥 따라 한단다. 몸소 실천하는 자체가 가정교육이지.
‘장자’의 ‘목계’(나무로 만든 닭)라는 고사하나 소개하고 마치련다. 중국에 한 왕이 있었는데, 닭싸움을 많이 시켰거든, 이걸로 노름도 하면서. 왕은 최고의 싸움닭을 갖고 싶어, 혈통 좋은 닭을 구해 조련사에게 최고 잘 싸우는 싸움닭으로 만들라고 했지.
열흘 뒤, 왕이 조련사에게 다 되었냐고 물으면, 조련사는 “아닙니다. 닭이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자기가 최고인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교만한 것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해지.
열흘 후 왕이 또 물었지. 조련사는 “교만한 것은 고쳤는데, 아직도 다른 닭소리만 나면 싸우려고 하고, 심지어 자기 그림자를 보고도 상대방인 줄 알고 싸우려고만 합니다, 조급증을 고치지 못했습니다”했지. 열흘 후 다시 묻자, “조급한 성질은 고쳤는데 아직도 눈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 자기와 눈만 마주치는 닭이 있으면 싸우려고 쫒아갑니다”라는 거야.
왕은 짜증이 났지만 며칠 기다린 뒤에 묻자, 이제야 조련사는 “이제 진정한 싸움닭이 되었습니다. 이 닭만 가지고 투계장에 가시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습니다. 모든 닭들이 이 닭을 최고의 고수인줄 알고 미리 기권할 것입니다. 나무로 만든 닭처럼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을 할 때, 때론 의욕만 앞세워서도, 자기가 최고인양 교만해서도 안되고, 일의 순서를 봐가며 한번쯤 더 생각하고(조급함을 버리고) 일한다면(실천), 물 흐르듯 그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지.
항상 긍정하고 감사하며 서로 따뜻한 마음을 갖는다면, 아무리 화가 나도 눈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눈빛은 온화함으로 가득 차며, 남편이든 자녀들이든 그 눈빛을 보면 사람들이 부드러워지고 안정되며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지.
어렵지만 이를 실천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부부 사이의 애정으로 발전할 것이며, 다른 부류의 커플보다 더욱 진솔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되는구나. 마음속에 남는 제자들이고 ‘혜선’이니 몇 자 적어봤단다. 행복은 항상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