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즉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말이다.
이러한 전통지리관에 의해 이 땅의 모든 산을 망라한 산에 대한 족보가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쓴 <산경표(山經表)>이다. 이에 따르면 한반도의 산줄기는 백두산을 뿌리로 하는 나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나무 구조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줄기가 바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수계를 가르는 산줄기의 연속된 흐름이다.
이 큰 산줄기에서 한반도의 큰 강들의 수계를 가르는 산줄기가 뻗어나가는데 <산경표>에서는 이를 1정관 13정맥으로 분류하였다.
여기에서 또다시 작은 가지들이 큰 강의 지천의 수계를 가르며 뻗어나간다.
1990년대 이후 산악인들 사이에서 백두대간 종주가 유행처럼 번졌다. 지리산 천왕봉에서시작하여 덕유산-속리산-소백산-태백산-오대산 등을 거쳐 진부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난 등산로 743.65km를 주파하는 것이다.
백두대간을 구간으로 나누어 여러번에 걸쳐 종주하지 않고 단번에 주파한 서천 사람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장항읍에 사는 김정훈(37)씨가 바로 그다. 그를 만나 백두대간 종주한 이야기를 들었다.
“간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등산을 권했습니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희리산을 오른 게 2005년도였다. 그러나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큰 충격이었다.
그는 이후 철저한 식이요법과 낮은 산을 오르는 운동으로 100kg이 넘는 몸무게를 80kg으로 줄였고 점차 등산에 매력을 느껴 친구들과 산악회를 조직하고 서천에서 가까운 산들을 하나하나 오르기 시작하여 지리산 종주도 3차례나 했다.
그러다 보니 백두대간 종주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게 되었고 자신도 이를 해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1년전부터 틈틈이 인터넷을 통해 백두대간 종주기를 읽으며 준비를 했다. 마침내 지난 5월 3일 이를 실행에 옮겼다.
평소 무박산행을 하던 그가 일주일치 식량을 담은 40kg이 넘는 배낭을 지고 천왕봉을 향해 오른지 30분도 안되어 자신을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친구를 다시 부르려 휴대전화를 꺼내들기도 했다.
지리산 구간을 끝내고 남원 여원재에서 배낭을 정리하여 사흘치 식량만 배낭에 담아 무게를 최소화 하였다. 차츰 속도가 붙어 새벽 4시30분경 동이 트기 전에 출발하여 해지기 직전에 물을 얻을 수 있는 곳까지 하루에 20-30km씩 주파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고개마루까지 식량을 가져다 주었고 서천에서 멀어지면서부터는 마루금에서 탈출하여 인근 도시로 내려가 식량을 마련하여 다시 마루금을 탔습니다”
속리산에서 처음 같이 출발했던 제주에서 온 팀 3명을 다시 만나 그들과 같이 종주를 하게되어 한결 수월하게 종주를 지속할 수 있었다.
또한 오세대 장항의소대 부대장, 서형달의원, 전익현 의원, 박노찬 의원 등이 격려문자메시지를 보내와 큰 힘이 되었다고 전했다.
“태백산 구간을 지나며 마루금까지 치고 올라온 고랭지 채소밭을 보고 백두대간이 크게 훼손된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그는 해뜨기 직전 발 아래 펼쳐진 운해를 바라보는 것을 대간 종주의 최고의 묘미로 꼽았다.
“멧돼지 새끼를 보면 절대 만지면 안됩니다. 어미가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는 6월 17일 진부령에 도착하여 46일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산을 오르며 건강을 회복했으니 그의 이 나라 산천에 대한 사랑은 더욱 각별하리라. 또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백두대간 종주라는 큰 일을 해냈으니 앞으로 그가 하는 일도 술술 풀려나가리라.
제목 넘 멋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