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상재 선생 손자 이은직씨
이승만 정권 시절 내내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없었다. 1949년 4월 ‘건국공로훈장령’이 대통령령 제82호로 제정 공포되었는데 이 때 서훈자는 이승만 대통령 본인과 이시영(이회영 동생) 부통령 둘 뿐이었다. 민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월남 이상재 선생에게는 1962년에 와서야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그랬던 것처럼 월남 선생의 유가족들이 겪은 고초란 필설로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뜻한 봄볕이 내려쬐던 지난 5일 한산면 종지리 월남 선생 생가터가 있는 마을에 살고 있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손자 이은직(79)씨를 찾았다.
월남 선생의 가계도를 보면 셋째 아들인 승간은 그의 아들 대에 와서 손이 끊겼고, 장남인 승윤, 승인의 후손들이 서울에 몇몇 살고 있다. 고향 종지리를 지킨 것은 월남 선생의 넷째 아들 승준으로 그의 둘째 아들 은직씨는 현재 종지리에서 부인 백옥섬(77) 여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월남 선생이 둔 4남 가운데 막내인 이승준의 둘째 아들로 1933년 종지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릴 때 아버지 승준은 일제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전북 익산으로 거주지를 옮겨 그는 익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익산에서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일제가 만주에서 들여온 콩깻묵으로 연명을 하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5년 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익산의 함열농업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1966년도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서천의 한산, 기산, 마산, 문산면 등지에서 근무하다 1992년에 정년 퇴임했다.
1986년에 그가 살던 집은 월남 선생의 생가는 보존을 해야 한다며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국가에서 지어주었다. 이 해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이후 얼마씩 나오던 연금도 끊어지고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이란 아무것도 없다.
은직씨는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성규와 함께 종지리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 장남은 5년 전에 작고했다. 손주들은 외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외지로 나가 살고 있다. 어쩌면 그가 종지리에서 살고 있는 월남 선생의 마지막 후손이 될 지도 모른다.
“애들 가르치지도 못했고, 국가 혜택도 없고 먹고 살기 바빠 일가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고들 삽니다.”
귀가 어두워 더 많은 것을 묻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가족을 돌볼 겨를이 없이 나라를 위해 열정을 불태운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누구보다도 잘 살고 있어야 할텐데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던 자들의 후손들은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서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