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살다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은 농어촌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비인면 다사리 2구에 사는 김종현(57)씨는 그가 태어난 집 자리에서 터를 누리며 50이 넘도록 살고 있다.
“여기가 본래 마을 이름이 구수골입니다. 뒷산이 소 ‘구수통’ 닮았다 해서 구수골이라 합니다.”
지명 유래가 고스란히 담긴 정겨운 마을 이름이다. 이런 지명이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기록에서나 찾아볼 수 이름이 돼버렸다.
종천방조제를 막기 전까지 구수골은 밭 한뙈기가 귀한 궁벽한 어촌이었다. 갯벌에서 나는 온갖 어패류가 이 마을을 살려온 셈이었다.
김종현씨는 이 마을에서 6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그가 기억하는 어릴 때의 서천 바닷가는 대부분 모래언덕이었다. 다사리나 장포리에 가서 높은 모래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았다고 한다.
“그 당시 1m 간격으로 촘촘히 촘촘히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오늘 울창한 숲을 이룬 다사리나 장포리의 송림은 대부분 1960년대에 심은 것들이라는 것이다.
대대로 갯벌에 의지해 살아온 그는 논농사를 일체 짓지 않고 김양식과 작은 동력선 한 척을 부리고 있는 전업 어가이다. 4남매를 두었는데 끝으로 쌍둥이를 낳게 되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다.
작년부터 어촌계장 일을 맡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애향심이 강한 그에게 마을 일을 맡긴 것이다.
“우리가 대를 이어서 살아온 이 갯벌을 후손들에게도 잘 물려주어야 하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그는 김 양식에서 밀식을 줄이기 위해 올해 15% 정도 면적을 축소하기로 어촌계원들과 합의를 이루어냈다. 그가 중심이 되어 새롭게 쓰려는 비인 김 양식의 역사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