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에 초등학교 졸업장 받은 함영웅씨
고희에 초등학교 졸업장 받은 함영웅씨
  • 고종만 기자
  • 승인 2012.09.10 11:14
  • 호수 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졸업장 받기까지 60년 걸렸네요"

▲ 함영웅씨가 초등과정 졸업장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배우지 못한 한이요,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모릅니다”
지난 1일 서천 문예의 전당 소강당에서는 조촐했지만 감동적인 늘푸른배움터의 졸업식이 열렸다. 이날 주인공들은 지난 5월초 실시된 초등, 중등, 고등검정 시험에 합격한 13명이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거나 조실부모한 탓 등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채 많게는 수십여 년 만에 배우지 못한 한을 검정고시 합격이란 인간승리를 이끌어낸 만 학도들이다.


부인과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고령으로 초등과정 졸업장을 손에 쥔 함영웅(71·서천읍·농업)씨는 “지난 5월 치러진 초등과정 검정고시에서 도덕 점수(90점)가 가장 잘 나왔다. 꿈에 그리던 초등과정 졸업장을 손에 넣기까지 꼬박 60년이 걸렸다”면서 “이 기쁨을 평생 함께한 처와 자식, 지하에 계신 부모님과 함께 나누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네 살 때인 1945년 아버지와 어머니가 호이자(콜레라)에 감염돼 보름간격으로 돌아가신 뒤  20대 초반까지 친척집에서 머슴처럼 일만 하고 살았던 함씨다. “친척분이 장조카인 형만 초등학교를 보내주곤 누님과 나는 ‘여자는 조신하게 있다가 시집만 가면 되지 무슨 공부냐’‘막내이니까’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일만 시키고 학교에 보내주시지 않아 품었던 서운함이 가슴속 응어리로 남아 있다”며 회한에 잠겼다.


또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함씨는 “아이들이 부모님 배웅을 받고 등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 거의 매일같이 펑펑 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며 “친척집 머슴살이가 고될 때마다, 조실부모하고 배우지 못한 무학자를 ‘애비 없는 호로자식’이라며 동네 어른들이 대놓고 무시할 때마다 배움에 대한 의지는 더 커졌다”고 말했다.


학력차별이 심했던 사회분위기 탓에 무학자인 함씨는 제대로 된 일자리 대신 육체노동을 요하는 정미소(쌀 방아간)나 떡 방앗간, 음식점, 한약방 등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왔다.
나이 서른에 부인 김정남(62)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둔 함씨는 일이 고되고 힘들 때마다 “내 비록 조실부모한 탓에 배우지 못했지만 자식들만큼은 가난과 배우지 못한 한은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이를 악물고 자식 뒷바라지 해왔다”고 한다.


그 결과 자녀 넷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이 가운데 둘째딸 경선(40)씨는 천안교육청 교육공무원으로 재직 중이고, 막내아들 형곤(38)씨는 학원 강사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초등과정 졸업도 축하할 겸 고희 기념으로 자녀들로부터 승용차를 선물 받았다는 함씨의 새로운 목표는 중등과정 검정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란다.


“지난 8월 실시된 중등과정 검정시험에서 20~30점대 저조한 점수로 낙방했다”는 함씨는 “내년에는 꼭 합격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 내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