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40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무술이다.
고구려의 고분인 무용총 벽화나 신라의 석굴암 금강 역사상을 보면, 현재의 태권도 자세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신라 시대에는 화랑도의 무술로 발전했고, 고려 시대에는 무예로 이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군사의 무예실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때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태권도를 사멸시키기 위해 그 명칭을 못 쓰게 하고 가라테와 통합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워낙 오랜 전통과 우월성을 지닌 태권도는 꿋꿋이 명맥을 유지해, 현재 무예를 넘어 세계적인 스포츠로서도 확고히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IOC가 요구하는 국제 규격을 갖추고자 강도 높은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한 결과 올림픽 인기종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태권도는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 가맹국 수가 204개국으로 태권도의 국제적인 위상이 예전에 비해 크게 높아졌음을 반증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는 한국태권도가 지난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대회와 2012년 런던올림픽 등 최근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자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임 코치진을 꾸리기로 결정, 지난 7일 서천 출신의 김종기(54) 감독이 대한태권도협회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대한민국의 명예회복을 위해 오늘도 선수들과 피나는 훈련을 소화해내고 있다.
김종기 대표팀 감독은 장항읍 창선동에서 태어난 자랑스러운 서천인이다. 장항초등학교를 졸업한 김 감독은 친구들에 비해 체구가 작고 허약해 심신을 단련하고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지역 내 태권도를 배울 수 있는 곳은 (구)서천체육관이 유일해 매일같이 장항과 서천을 오가며 태권도를 수련해온 김 감독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신은하 관장의 적극적인 지도와 추천으로 서울체육중학교 태권도부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전국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휩쓸며 그 실력을 인정받아온 김 감독은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체육대학과 대학원을 졸업, 실력과 학문을 겸비한 엘리트 체육인으로 자신의 실력을 쌓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김종기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시절,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1977·1979·1982년)와 아시아선수권대회 3회 우승(1976·1978·1982년), 프레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발차기 하나로 세계무대를 누비며 명성을 떨쳐온 김 감독은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대표팀 코치로 참가해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따내는 등 지도자로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태권도를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젊음을 바친 김 감독은 그 노고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거상장을 비롯해 백마장, 맹호장, 대통령표창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김 감독은 “중직을 맡게 돼 기쁘기도 하지만 어깨가 무겁다” 며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된 태권도 경기를 보여주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훈련하겠다”고 짧은 소감을 표했다.
또한 김 감독은 “초등학교를 졸업 후 늘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장항은 늘 마음에 안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향 후배 양성을 위해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