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콩 심은 데 콩이 안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안 난다?
■ 기고/콩 심은 데 콩이 안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안 난다?
  • 장미화
  • 승인 2016.05.02 16:49
  • 호수 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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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화/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석사과정. 시초면 초현리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우리말 속담이 곧 사라지지 않을까? 고추 모종을 사서 잘 키워 수확한 후 그 씨를 받아 심었는데 왜 같은 종이 안 열리지? 이것은 비단 고추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품질 개량 즉 유전자변형을 통한 종자가 보급되면서 일어나는 흔한 현상이다. 다국적 거대기업들은 이익을 위해 유전자변형을 통한 종자독점과 품종단일화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가 하면 특히 제 3세계 국가나 개발도상국들의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유전자를 변형시켰을까?

  우선 유전자를 변형시키기 위해 내가 원하는 유전자가 무엇이며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180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유전자에 대한 개념적 오류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어떤 형질이 섞여(Blending) 자식에게 나타난다고 생각했는데 즉 완두콩의 보라색 꽃과 흰 꽃이 수분되면 분홍색 꽃이 피어야 된다는 가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56년 멘델의 완두 재배와 유전에 관한 실험을 통해 섞이는 것이 아니라 각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형질이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자손에게 나타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멘델의 법칙은 전자현미경의 발달과 식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1900년대 들어서야 유전학의 핵심이론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1902년 보베리(T.Boveri)와 셔튼(W.Sutton)은 ‘무엇이 유전되는가?’에 대해 멘델이 밝히지 못한 형질이 염색체상에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고, 1944년 에이버리(O.Avery)에 의해 염색체상의 DNA가 유전물질임이 증명되었다. 1952년 치밀한 성격의 왓슨(J.Watson)과 상상력이 뛰어난 크릭(F.Crick)의 만남을 통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DNA이중나선구조가 발견됨으로써 불과 100여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유전학의 큰 기틀이 만들어진다.

그 이후 빠르게 DNA의 염기 서열이 분석되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손쉽게 많은 양의 DNA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인 중합효소연쇄반응법(PCR)이 개발되면서 DNA 분석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2001년 미국의 셀레라지노믹스사(Celera Genomics)가 인간의 DNA샘플을 이용해 30억 쌍의 염기 서열을 밝혀내고 인간유전정보 해독을 위한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함께 인간게놈지도의 99%를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2003년 염기서열 가운데 해독하지 못한 곳 중 대부분을 풀어 인간게놈 지도를 최초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후 2008년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Next-generation sequencing)이 개발된 이래 더 빠르고 저렴한 비용으로 유전체 서열 분석이 가능해졌고 이어 DNA의 정보들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구글이 투자해 지난 2006년 설립된 유전자 검사 회사 ‘23andME’은 99달러, 우리 돈으로 10만원만 내면 6~8주 만에 120개 질병의 위험도와 21개 약물에 대한 민감도, 보인자, 개인 특성 등을 분석해 준다는 보도기사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DNA의 특정 부위를 절단하고 유용하다고 판단한 DNA를 삽입,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유전물질을 조작하고 있다. 이러한 유전자재조합기술을 이용한 것이 유전자 변형 생물(GMO)인 것이다.

주변에서 희귀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해, 암으로 고통 받는 가족들을 위해 치료방법을 제시해 줄 수도 있고, 안젤리나졸리의 경우처럼 미래의 병적 위험 인자를 찾아 유방과 난소를 제거함으로써 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다. 또한 범죄현장에 떨어져 있는 혈흔이나 분비물, 모발 등의 증거물로부터 범인을 검거할 증거를 제시해 주기도 하며 친자확인, 실종자나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들의 유전자 확인을 도와준다. 또한 고고학적으로 진화의 근연관계를 밝히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도 만만치 않다. 유전정보가 공개되었을 때 희귀유전질환자나 암 발생가능성이 밝혀질 경우 보험 가입 제한이나 고용에 대한 거부 등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또한 유전정보가 상업적으로 이용될 경우 개인들의 유전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불법적 거래가 성행할 것이며 개인의 신상정보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 유전정보의 선택적 표집을 통해 지능이나 인종 간 차별, 민족 간 계층 분리 등 우열을 가른다거나 타고난 범죄유전자에 대한 인식 확산으로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전자 변형 생물(GMO)을 사람이 섭취했을 경우 인체 유해 논란과 더불어 환경문제 등 다양한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

분자 생물학과 유전학을 통한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뉴턴의 표현처럼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날 다양한 생물들의 생명활동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 열쇠를 인류의 행복과 건강, 복지의 문이 아닌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문을 여는 열쇠로 사용된다면 평생을 바쳐 연구한 학자들의 심정을 어떨까?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건강과 복지, 행복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한 부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과학기술에 따른 사회문제의 인과관계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앞으로 제기될 수많은 유전체 서열 확보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한 논란의 합의를 위해 윤리적, 사회적, 법적 성찰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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