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곳에 가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통통한 생선사이로 살아 숨쉬는 게와 오징어, 코를 간지럽히는 호떡과 순대 냄새, 반질반질한 예쁜 신발과 옷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재래시장은 사람들이 사고, 팔고, 흥정하며 먹고 마시는 등 다양한 삶의 향기가 풍겨 나오는 곳이다.
“활기에 찼던 시장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한데 이곳도 나처럼 늙고 헐벗어 가네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슈퍼마켓이나 대형 할인마트에 밀려 명맥 잇기조차 어려워진 재래시장에서 지업사를 운영하는 조한곤(64·서천읍 군사리)씨. 평생을 재래시장에 바쳐온 그는 이곳이 추억의 장소로 전락, 세상의 뒤편으로 사라진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과거 소를 팔기 위해 새벽부터 외지인이 판교 우시장으로 모여든 모습과 서천시장 국밥 집에서 먹던 막걸리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조씨는 현재 서천시장과 판교, 비인을 순회하며 장사를 한다.
서천장은 이제 상설시장으로 주민 이용이 꾸준한 편이지만 판교와 비인 등 면 단위는 이용객이 과거의 절반수준도 안돼 오전 장만 서고 있다. 또 사람들이 떠남과 동시에 판매하는 품목도 줄어 장의 특색도 사라지고 개점휴업상태의 점포가 늘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돕기 시작한 조씨는 20대 초반부터 가업을 이어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산채 한줌을 보자기에 펼쳐놓고 수줍은 미소를 짓던 젊은 아낙과 조금이라도 더 깎으려는 소비자와 더 받으려는 장사꾼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정다웠다”는 조씨.
시장이 변했듯 그가 운영하는 지업사의 취급 품목도 변했다. 과거 지업사는 창호지와 종이장판 등 종이용품만 다뤘는데 나일론 제품이 나옴에 따라 비닐장판과 벽지, 비닐용품 등 20여종의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업자를 선정해 시공까지 겸하고 있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 날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시장과 함께 늙어온 자신처럼 젊은 시절 만났던 주민들의 늙은 모습에 인생의 허탈함마저 느껴진다”는 조씨는 40여 년간 서천지역 시장을 순회하며 지역주민 모두가 한 가족이 됐다. 5일만에 만나는 비인과 판교 주민들은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종종 막걸리 한잔하자며 그의 소매를 끈다.
그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배운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덤의 문화이다. 풍족하지 않지만 더 얹어주는 것은 시장을 더욱 훈훈한 곳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는 나눔의 문화를 몸에 고스란히 익혀 남몰래 타인을 돕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넉넉해서 나누는 것이 아닌 작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정을 나눈다는 것이 좋다”는 조씨는 명절에 불우한 이웃에게 성금을 전달하는가 하면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남몰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조씨가 장사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상도덕으로 정직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질 좋은 상품을 정당한 가격에 파는 성실한 자세를 기본으로 소비자를 대했을 때 외지로 유출되는 주민들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조씨는 젊은 상인들이 서천 재래시장의 미래를 짊어진 사람들이라며 항상 친절한 모습으로 상업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특화시장을 비롯해 시장의 시설은 점점 좋아지지만 과거보다 인심은 흉흉해 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조씨.
농경시대에 가난한 농민들의 축제 한마당이었던 시골장터를 삶에 지친 사람들이 정을 느끼고 쉬어 가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덤의 문화가 숨쉬는 재해시장 삶의 다양한 향기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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