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인물교체가 쉽고 빠른 길
이 글은 지난 1일 (사)바른지역언론연대 2003년 하반기 연수에서 연수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상지대 정대화 교수(사진)의 한국정치에 관한 강의는 현재 불법정치자금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정치개혁의 진행상황과 국민들의 실천과제 강의내용이다. 이날 강연에 나선 정대화 교수는 ‘장강의 앞 물은 뒷물이 밀어내고 먼저먹은 밥은 뒤에 먹은 밥이 밀어낸다’는 비유를 들어 ‘인물교체를 통한 정치개혁’을 강조했다. 정대화 교수의 강의가 정치권에 대한 검찰의 불법정치자금수사정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글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비자금 아니라 불법정치자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에스케이그룹 비자금 사건은 비자금이 아니라 불법정치자금이다. 지금 이 순간은 불법정치자금 문제가 한국의 정치개혁에 불씨를 지필 것처럼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유야무야 넘어가고 말 것이다. 더 이상 그들에게 정치개혁을 바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차리리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이 낫다. 고양이는 배가 부르면 그만 먹지만 정치인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먹고 또 먹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국민들이 정치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서 너 정치해라 하는 정치구조가 아니라 정치하는 사람이 국민에게 밥 사주고 나 찍어달라고 하는 구조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는 불법정치자금문제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전체 병사의 능력을 능가하는 장군은 있을 수 있으나 전체 유권자의 능력을 능가하는 정치인은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정치권의 모습은 우리 유권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통상 정치개혁은
통상 정치개혁은 정당제도, 선거제도, 정치자금제도, 국회제도 등 제도개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이것은 정치개혁에 대한 제도론적 접근일 뿐 실제의 정치개혁은 제도개혁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도개혁은 정치개혁의 제도적 결과일 뿐이다. 정치개혁은 제도개혁을 포함한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제도의 개혁 또한 중요하다. 정치개혁의 제도적 개혁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다. 최소한 다음의 것들은 충족되어야 제도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개혁은 최소한 △정당운영의 민주화 △당원 중심의 정당운영과 당비납부의 현실(의무)화 △지구당의 민주적 활성화 △실질적인 상향식 공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자금의 개혁은 최소한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정치자금 입출금의 수표 혹은 신용카드 사용 의무화 △일정금액 이상의 납부자의 명단이 공개되어야 한다.
▲선거제도의 개혁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실질적 도입 △선거간 인구편차 축소(3대 1) △시민, 시민단체의 선거참여가 허용돼야 한다.
▲국회의 개혁은 △입법지원처의 신설 △국회운영의 합리화 △이해충돌방지장치의 설치 등을 들 수 있다.
세상은 언제 바뀌나
현재 우리 정치의 아노미 현상(정치적 불안정)은 대안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옛것(이른바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은 사라졌는데 새것(이른바 노무현)이 안 나타나면 사라져야 할 옛것이 사라지지 않고 공존하게 된다. 역사를 통해 보면 새로운 시대에 대한 민중의 희망과 기대가 교차하면서 기대가 좌절될 때, 즉 지금의 우리 정치상황과 같은 때에 만약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겹치게 되면 자칫 민주주의가 역류하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제 3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모델이다. 그러나 정치는 실패모델이다. 이제 정치를 성공모델로 만들어야 경제적으로도 성공모델로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대안에 의해 조직되고 대안에 의해 실현돼 왔다. 확실한 대안이 서게 되면 세상은 바뀌었다. 한국정치는 4.19, 광주항쟁, 6월항쟁, 총선연대 등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단속적으로 표출되는 거리의 정치,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와 삶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났지만 새로운 요구를 담은 정치를 제도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절망으로 결론지어지고 말았다.
이제 나는 사람을 바꾸는 정치개혁을 주장한다. 정치개혁을 이루는 방법 중에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는 낙선운동이었다면 이번에는 시민사회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거나 당선운동을 벌여야 한다.
기성정당을 넘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의 구상은 사회의 모든 계층이 공평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틀을 갖는 것이며, 시민사회의 의제가 정치적 결정의 장에서 관철되는 정치이며, 정당, 국회, 선거에서 국민참여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사회이다.
그러나 기성 정당에게 이런 시민사회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17대 총선을 통해 우리의 정치가 개혁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위해서는 선거국면에서 유권자 개인의 양심적 인식으로는 넘기 힘든 지역감정의 거대한 사회적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제 우리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2000년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당원수는 612만이었다. 말이 612만이지 이를 가구수로 따지면 국민 대다수가 특정 당에 소속된 당원인 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당비를 내는 사람은 고작 3만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마 당비를 낸 사람은 당직자들이었을 것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경우 당비를 내는 당원이 2만5000명이다. 민주노동당은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는 당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아직 현실 득표력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유연성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국회에 진출해 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 273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으로 늘이는 대신 독일처럼 지역구의원과 비례대표의원의 비율을 5대5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성정당들이 아무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3대 1 수준, 즉 지역구의원을 200명선, 비례대표의원을 99명으로 하는 수준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실질적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고 비례대표 의원정수가 늘어난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망국의 정치, 지역감정의 정치는 어느 정도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장강의 앞물은 뒷물이 밀어낸다’는 중국의 민담을 기억하면서 시민들의 힘이 낡은 정치를 밀어내는 장강의 뒷물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
<남해신문 기사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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