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 승인 2020.04.08 13:59
  • 호수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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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꾼다
송우영
송우영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학문을 사랑하고<好學> 힘써 실천하며<力行>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知恥> 그러기 위해서는 착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明善> 자신의 몸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誠身>”

회재 이언적이 9세 때 자신의 방문에 써 붙여놓고 들고나면서 읽고 또 읽었다는 자수自修의 잠이다. 회재 이언적은 이때부터 중용을 읽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사대부가에서 중용을 읽는 나이는 보통 16세 혹은 17세 무렵인데 비해 상당히 빠른 경우다. 이처럼 어린 나이임에도 중용을 읽고 또 중용 중에서도 구경장九經章에 천착하여 훗날 불후의 명작 중용구경연의를 쓴다.

회재의 구경설은 통치철학의 핵심으로 자리매김된다. 1652년 효종310월 고산 윤선도는 효종에게 올린 시무팔조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대학과 중용 두 권이면 족한데 특히 중용 안에서도 구경장이 절실합니다. 이 구절에서 배우는 바가 있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울 것입니다고 상소를 올렸다.<운선도 고산유고 권2 시무팔조를 아뢰는 상소 陣時務八條疎>

물론 나라 다스리는 것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회재의 구경연의는 당시 선비들 사이에 발군의 책이었다는 것이다. 중용구경연의를 읽고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을 품은 이가 12세 소년 김육이다.

김육은 5세 때 퇴계 이황의 문인 조호익에게서 글을 읽어 안국사 노승에게서 소학을 읽었고 9세 때 우계 성혼에게 공부했으며 11세 때는 윤근수와 윤두수 문하에서 공부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13세 때는 전란 중임에도 사계 김장생을 찾아가 공부했고 율곡 이이와 청음 김상헌을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김육은 십대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모집에서 살면서 지독하게 공부를 한 인물이다. 그야말로 공부에 무슨 한 맺힌 사람처럼 공부했다고 한다. 아마도 단언컨대 조선 사회 깡그리 탈탈 털어도 김육처럼 스승을 많이 모신 인물도 없을 것이다.

또 이 책을 읽고 글에 인생을 건 인물이 있었으니 신천옹信天翁 이덕무가 그다. 이덕무는 12세 때 회재의 책 중용구경연의를 세필보다는 크고 일반글씨보다는 작은 파리 크기만큼 글씨로 쓰는 승두세자蠅頭細字를 하면서 회재를 본떠 자수잠自修箴을 써서 방문에 붙여 들고나면서 읽었다 하는데 첨언으로 책을 읽는 이유는<독서자讀書者>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이신위상怡神爲上>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기차수용其次受容>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기차엄박其次淹博>”도 함께 써서 자신을 절차탁마했다 전한다<靑莊館全書 耳目口鼻書>

자수잠自修箴은 율곡 이이가 9세 때 초안을 잡았다는 경계의 잠인 자경문自警文과는 결이 조금은 다른 율곡은 치자의 잠이고 회재나 신천옹은 수신의 잠이다. 이러한 이덕무를 사숙한 이가 또 있었으니 문체반정의 중심에선 이옥이다.

이옥은 이덕무의 이목구비심서를 가지고 필력을 키웠는데 특히 이목구비심서에 실려있는 쥐와 족제비와 벼룩의 글을 이옥은 다른 버전으로 풀어내는데 백운필 담수에 있는 족제비에 관한 글이 그것이다. 물론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지금 시대는 표절 운운하겠지만 당시에는 존경의 의미로 종종 차용하기도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옥이 이덕무를 사숙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선대先代의 가계家系가 무관치 않다.

이덕무의 벗 유득공의 부친은 유춘柳瑃으로 이옥의 부친 이상오李常五는 같은 장인을 모시는데 유춘은 홍이석洪以錫의 맏딸과 결혼해서 맏사위가 되고 이상오는 홍이석의 셋째 딸과 결혼해 셋째 사위가 된다. 이로 인해 유득공과 이옥은 이종사촌이 된다.

이점이 이옥이 이덕무를 사숙하는 단초가 되는데 특히 유득공이 이덕무가 베껴 쓴 승두세자蠅頭細字본이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 틈틈이 이옥에게 전해주어 읽어보게 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옥은 자연스럽게 한학사가漢學四家의 문장을 터득하게 된다. 한학사가란 연암 박지원의 가르침을 받은 4문도를 말하는데 이서구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다. 이중 이서구만 사대부가이며 방외지사로 귀신을 보는 안광을 가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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