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인륜지대사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보다 더 큰 일은 없다는 뜻이다. 인생을 둘로 나눈다면 결혼 전과 이후가 아닐까 싶다. 부모 품에 있는 것과 부모 품을 떠나는 인생이다.
나는 결혼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지금이야 세상이 달라져 둘만의 신혼살림을 차리지만 그 때는 장남이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어머니, 집사람, 나 셋이 살았다. 이 후 애기 둘을 낳았으니 식구가 셋에서 다섯으로 늘었다.
고부 갈등이야 왜 없었겠는가. 눈치가 없는 나는 살면서 호된 성인식을 치렀다. 아리랑 고개가 왜 그리도 힘들었는지. 봄날의 진달래가 왜 그리 눈부셨는지, 뒤늦은 대오각성은 내 인생에서 큰 교훈이 되었다.
언제면 우리 둘이 살 수 있을까. 그런 얘기하면 경을 칠 일이지만 젊었을 적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조차 불효라 생각해 아들인 나로서는 금기사항 같은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금의 내 나이에 중풍으로 돌아가셨다. 요즘에 와 일찍 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에 울컥 가슴이 메일 때가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승에서의 인연이 이리도 짧은 것인가. 두 손녀를 보고 나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이승을 떠나고 애들은 시집을 갔으니 이젠 다섯 식구에서 네 식구로, 지금은 부부 둘만 남았다.
언제면 단출하게 부부 둘이서 살까, 그것이 엊그제 일인데 세월은 그렇게 훌쩍 흘러 머리엔 허옇게 서리가 내렸다. 집사람이 어쩌다 손녀를 봐주러 가는 날이면 나 혼자 남는다. 혼밥에 익숙하지 못한 나인지라 하루만 지나도 아내가 기다려진다.
결혼해서 다섯이 살다 지금의 둘이 있기까지 삼십오년이 걸렸다. 지금부터 혼자 남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릴까. 팔십이면 십년이요, 구십이면 이십년이요, 백년이면 삼십년이다. 아무도 모르는 조심조심 심봉사의 초행길이다.
하나도 없을 때까지는 또 몇 년이 더 걸릴까. 고작해야 5년 안팎이 아닐까. 언뜻 언뜻 그런 생각이 스쳐가는 것이다.
요새 내가 쓰고 있는 시조가 있다. ‘묵서재 일기’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어머니, 연인, 아내에 대해서 썼다. 지금은 묵서재 일기인 ‘나’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빚이 많다. 어찌 갚을 수야 있겠냐만 시로서나마 조금이라도 나를 위로해주고 싶어서다.
산이 얼마나 높은지
강이 얼마나 깊은지
넘을 수가 없어서
건널 수가 없어서
한 평생 초승달이 되었고
한 평생 목선이 되었지
- 신웅순의「묵서재 일기 20 」
인생이 얼마나 높고 깊은지는 알 수가 없다. 인생의 산은 높아 넘을 수가 없고 인생의 강은 깊어 건널 수가 없다. 그래서 한 평생 산 위에 뜬 초승달이 되었고 강물 위에 뜬 목선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살아가는 인생이 아닐까.
결혼 전 그 옛날 부모와 함께 살 때는 식구가 여덟, 아버지가 떠나고 형제들이 결혼하고, 어머니가 떠나고 내 아이들이 결혼하니 식구는 여덟에서 다섯으로 줄었고 지금은 둘로 확 줄었다.
아내가 묻는다.
“내가 좋아요?”
“그럼, 좋지.”
“왜?”
“밥 해주니까”
그리 말했더니 피식 웃는다. 내가 밥순이라고 대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 운동하러 갈게요.”
운동이라야 걷는 것하고 가볍게 요가하는 일이 전부이다.
우리 세대는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는데 익숙해져있다. 갈 때는 순서가 없다하지 않는가. 새삼 결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늦생각이 절절이 젖어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