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혼밥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밥은 여럿이 함께 먹어야 맛있는 법이다. 여럿이 같이 먹는 밥을 뭐라고 해야 할까? 두레밥이라는 말이 있긴 한데, 그것 말고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싶어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지다 대식(對食)이라는 낯선 한자어를 발견했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면 ‘마주 보고 먹는 밥’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풀이에는 그런 뜻이 보이지 않고 다음과 같은 뜻만 보였다.
1. 궁중에서 궁녀끼리 몰래 부부로 짝지어 동성연애를 함.
2. 여자끼리 성교(性交)를 흉내 내는 일을 낮잡아 이르는 말.
왜 이런 뜻을 가지게 되었을까 싶어 조사해 보니, 중국 한나라 때부터 쓰던 말이 우리에게 전해져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궁녀는 임금을 모시는 여인이어서 소유와 지배의 권한이 오로지 왕에게만 있었다. 일단 궁녀로 들어가게 되면 평생 결혼할 수 없으며, 궁궐 밖으로 나가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처지를 고려해서 이따금 가족이나 친지 중 여자에 한해 궁궐에 불러들여 함께 밥을 먹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를 대식(對食)이라고 했는데, 차츰 성격이 변해서 함께 잠을 자는 데까지 이어졌고, 그런 이유로 여성 간의 동성애를 이르는 속어처럼 쓰였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하고 정을 나누는 건 자연이 정해준 이치다. 억지로 막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고, 궁녀라고 해서 예외일 리 없다. 속담에 ‘동상전에 들어갔나’라는 게 있다.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웃고만 있는 경우에 쓰던 속담이다. 동상전은 과거에 잡화점을 취급하던 가게로 종각 뒤에 있었다. 온갖 물건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짐승의 뿔 같은 것으로 남성의 성기처럼 만든 각좆이라는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궁녀들의 성 욕구를 채워주던 물건인 셈인데, 궁녀가 동상전에 들어가서 차마 각좆을 달라는 말은 못 하고 빙그레 웃고만 있으면 주인이 알아서 물건을 내주었다고 해서 그런 속담이 생겼다.
각좆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궁녀끼리 사랑을 나누는 일이 잦았다는 건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궁녀들의 동성애는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발각되면 중벌이 내려졌지만, 막는다고 없어질 일이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동성애 사건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일이 세종 때 있었다. 궁녀 간의 동성애가 아니라 세자의 아내 순빈(純嬪) 봉씨(奉氏)와 궁녀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사건의 파장이 더욱 컸다. 세자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던 봉씨는 궁녀 소쌍(召雙)을 불러들여 여러 차례 잠자리를 가졌고, 이런 소문이 세종 귀에도 들어갔다. 사실관계를 파악한 세종은 봉씨를 폐위시켜 궁궐 밖으로 내쫓았다.
사랑하는 궁녀끼리는 서로 엉덩이에 벗을 뜻하는 붕(朋) 자를 문신으로 새기기도 했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여자의 동성애를 뜻하는 말로 ‘교붕(交朋)’이 올라 있기도 하다. 교붕과 관련한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나온다. 궁녀 둘이 동성애를 하다 발각됐는데, 연산군은 두 궁녀의 가슴에 ‘위법교붕(違法交朋)’이라는 글자를 새기도록 하는 벌을 내렸다.
동성애는 예나 지금이나 금기의 대상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인간의 성(性)은 한 가지 색깔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해가는 추세이기도 하다. 대식(對食)은 옛 문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이 됐고 이제 와서 되살려 쓰기도 힘들지만, 함께 밥 먹는 일만큼이나 함께 사랑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